전지은<간호사>
가을 산행을 떠난다. 이번엔 이곳에서 만남의 정을 나누는 이들과 함께이다. 우리들 육체적인 무게와 마음의 무거운 짐은 상당한 무게로 실렸을 터인데도 팔 인승 밴은 무게를 거부한 채 신나게 달린다. 믿음이 같은 성당 가족들과 신부님을 모시고 떠난 길이라 가슴의 추를 내려놓은 때문일까, 마음이 가볍다.
새로운 곳에 정을 붙이기 위해 산행이나, 짧은 여행 등에 가끔 시간을 낸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남편도, 나도 아직 서투른 것은 새로 시작한 사업뿐만 아니라 지리와 기후, 지역특성 등등 산재해 있다. 그러나 돌아 갈 것이 아니라면 늘 불평만 하며 싫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스스로 선택한 일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으로라도 이곳에 익숙해지려 노력한다.
신부님을 모시고 간 이유도 있지만 무사한 운전을 위하여 주모경을 바치며 길을 떠난다.
한바탕 가을비가 지난 산길은 수채화처럼 맑고 선명하다. 봄에는 각종 들꽃으로, 여름에는 자주색 돌산이 만년설을 이고 거울같이 투명한 호수에 제 모습을 비치며 그 웅장함을 자랑하는 Maroon Bell 산이, 가을에는 가슴을 살랑거리게 만드는 농익은 황금색 산언덕이, 겨울에는 록키 산맥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스키장들로 유명한 아스펜(ASPEN)은 사계절 어느 때나 매혹적인 자태로 여행객들을 유혹한다.
아스펜은 원래 유투 인디언이 발견한 도시로 ‘빛나는 산들’이라고 불리었다. 말 그대로 은의 매장량이 상당했던 아스펜 주위의 산들. 속으로 잔뜩 은빛을 품고 있는 은광에 둘러 쌓여 있던 도시, 아스펜은 인생의 한판 승부를 위해 달려 온 사람들로 붐을 이루었고 한동안 그 부귀영화는 최고에 달해 전성기를 누렸던 1893년경에는 록키 산맥 내에 있는 제일 부유한 도시로 매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인생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게 마련인 것을. 정부의 광산 권에 대한 개입으로 아스펜의 영화는 만추의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듯 했다.
은광으로 한 밑천을 거머쥐게 된 사람들의 자구책으로 스키장이 개발 된 것은 이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경이다. 이후 동계 올림픽은 물론 세계적인 대회들이 연중 줄이 잇는다. 특히 해마다 가을이면 열리는 각종 음악과 무용, 사진과 아트 페스티벌은 농익은 가을을 자연 그대로 배경으로 해 아름다움을 더한다. 뿐만 아니라 노랗게 묽든 아스펜 추리들의 이파리들은 온몸을 흔들며 찰랑거려 산언덕 전체가 춤을 추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며 마음을 흔든다.
차를 세우고 금빛 찰랑거림으로 초대되어 가면 가도가도 이어지는 가을산은 말 그대로황홀경이다. 이보다 더 고운 색깔의 가을은 아직 보지 못했거니와 걸어도 걸어도 계속 걷고 싶은 것은 자연과 믿음과 사랑이 함께 어우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노란 색깔이 흔들리며 금빛 치마 자락이 바람에 산들산들 날리는 듯한 가장 고운 산언덕을 볼 수 있는 것은 가을 중에서도 단 열흘에서 보름 정도라고 하니 이때를 맞출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다. 하느님께서 만들어 놓으시고 보시니 참 좋으셨을 이곳에 나도 함께 했음에 감사한다.
돌아오는 산길엔 세대에 따라 나뉜 두 팀이 노래이어 부르기를 한다. 유치원, 초등학교 노래에서 시작하여 이어지는 흘러간 옛 유행가와 팝송, 성가까지. 일박 이일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새로운 것은 늘, 오늘이 있음을 감사하게 해 준다.
붉은 노을에 어우러지는 도시는 이제 곧 고운 색을 초대할 것이다. 도시까지 가을 색으로 물들면 내 가슴도 활짝 열고 가을 고운 색을 흠뻑 적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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