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어둡고 비극적인 선율로 20세기(초)를 장식한 말러(奧, 1860-1911)의 음악은 허무주의적, 개인주의적… 사조를 타고 20세기 후반에 크게 개화했다. 말러의 음악은 대부분 사후에 널리 알려졌고, 이는 유태계 지휘자들의 공이 컸다. 널리 알려진 말러의 교향곡들은 같은 낭만주의 작곡가 ‘바그너’에 비해 가볍고, 베토벤에 비해 졸렬하고, 동시대의 브르크너에 비해 순수하지도 못했으나 단순히 유태인이었다는 점에서 유태계 음악가(지휘자)들의 절대적인 신봉 속에 널리 연주되어 왔다. 오토 클렘펠러, 브르노 발터, 게오르규 솔티 등은 말러라는 스타를 탄생시킨 일등 공신들이었다.
말러의 음악을 흔히 퇴폐적인 음악이라고도 한다. 세기말적, 혹은 ‘예술지상주의’라고도 표기하기도 하는데, 병적이면서도 멜랑콜릭한 선율이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기에 붙여진 평가인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전문가적 관점이고, 듣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말러의 음악은 듣기에 어렵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말러의 음악은 우선 색채적으로 어둡다. 길고 지루하며 현대 음악이냐 하면 그 것도 아니고, 낭만파 음악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동시대의 시벨리우스와 같은 격정이나 서정미를 갖추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고전파 형식미를 갖춘 심포니나 심포니 포엠(교향시)도 아니다. 고집스럽게 사상으로 치우쳐 있어 길고 방대하여 듣기에 부담이다. 그러면 무엇이 말러의 음악을 유명하게 만들고 있는가. 90%의 지루함 속에 10%의 번득임 때문이다. 마치 진리의 문이 훤히 열리는 듯한 감동이라고나 할까. 말러의 교향곡 1번(거인), 교향곡 2번(부활) 등이 주는 거대한 군무, 감동의 대 합창이야말로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다.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말러는 그 예지에 찬 음향으로 웅변하고 있다.
인류가 창출한 음악 예술을 유태인처럼 절묘하게 이용·애용해왔던 민족도 드물다. 악극의 창시자 바그너조차도 유태인 음악의 기발함에 고개 숙일 정도였다. 물론 바그너는 유태인의 음악을 사도(邪道)로 빠져있는 졸렬한 음악이라고 폄하하기도 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감수성이 한 수 떨어졌던 바그너의 열등의식의 고백이었을 뿐이었다. 멘덴스존, 마이어베르, 말러, 쇤베르크 등으로 이어지는 유태인 음악(작곡)가들의 공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말러의 작품 중 가장 들을 만한 곡이 1번(거인)과 2번(부활)등일 것이다. 2번(부활)은 1시간 반 짜리 대곡으로 마지막 5악장의 부활 대합창이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이다. 교향곡 8번은 천인이 노래한다는 합창의 극치이다. 녹음보다는 연주회가 효과적이고 그 외에 교향곡 5번, 9번 등의 아다지오, 그리고 교향곡 4번 등이 유명하다.
말러 교향곡 4번은 ‘천상의 노래’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는 작품이다. 늘 죽음과 삶의 문제를 고민했던 말러가 천국을 노래한 작품으로 말러판 전원교향곡에 해당한다.
말러의 음악을 후기 낭만파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이는 말러의 음악이 비극 속에서도 낭만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러가 창출해 내는, 거대한 오케스트라 음향의 대 합창이야 말로 내면에 깊숙이 침투하여 화려하게 작렬하는, 말 그대로 로맨티즘의 대명사가 아닐 수 없다.
말러는 그의 예술적 숙제, 삶과 죽음, 부활의 문제를 교향곡 제 1, 2, 3, 4번을 통해 연속적으로 토해냈다. 내용은 모두 토속동화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따왔다. 1번이 ‘거인의 장송곡’, 2번이 ‘부활의 노래’로 유명하다면 제4번은 ‘천상의 노래’가 유명하다. 어머니가 음식을 구하러 나간 사이 굶어죽은 소년은 가난, 질병, 굶주림에서 해방되어 고통이 없는 세계에서 절대 평화를 누리게 된다. 동화의 내용은 5살 때 숨져버린 딸 그리고 앞서간 말러의 11 형제를 그리고 있는 듯 한데 말러의 상상력이 총동원, 저 세상의 말할 수 없는 평화를 노래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천국을 본 사람은 없어도 3악장 끝 부분에서 폭발하는 로맨티즘의 대 향연을 듣고 있노라면 적어도 말러라가 말하려는 바를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이 땅 위에서의 비극적인 존재 인간이 동시에 천상의 존재라는 점이다. 인간에게 과연 슬픔이 없다면 소망(천상)이 존재했을까. 또 소망이 없다면 인생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이란 어차피 그 아픔을 승화하는 데 아름다움이 있다. 말러의 음악이 남기고 있는 숙제는 단순한 예술적 흔적이 아니라 모두의 아픔, 그리고 그 것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다. 그것은 음악의 궁극적인 감동, 존재의 긍정이기도 하다. 말러의 교향곡 4번은 1899-1900년 사이에 작곡되어 1901년에 뮌헨에서 말러의 지휘로 초연 되었다. 말러의 교향곡 중 비교적 짧으며(50분) 어딘가 늦가을의 성찰이 느껴지는 진하고 아름다운 곡이다.
인생은 가장 처절한 절망에서야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낙엽이 분무처럼, 아프게 메아리치는… 말러의 교향곡 4번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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