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많아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얼마 전 한국 저명 인사들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글 모음집이 출판된 적이 있는데 그 애틋함과 자식으로서 도리를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읽는 사람의 마음에 와서 닿고도 남음이 있었다. 관심 있는 것은 하나같이 아버지에 대해서는 별로 그리워하는 기색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시인 Y씨의 ‘거룩한 어머니’와 ‘한심한 아버지’에 대한 언급은 충격적이었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의 아버지, 당신은 참으로 행운아였습니다. 어머니를 만나 한평생 살았으니까요. 그런데도 당신은 그걸 모르는 듯했습니다. 당신이 결혼하자마자 일본으로 도망쳤을 때도 어머니는 혼자 시집살이를 견디어 냈습니다. 당신이 폐병에 걸려 조국에 가서 죽는다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도 어머니는 직접 흙벽돌을 찍어 집을 지었고, 겨울에는 발을 동동 굴러가며 보따리 장사를 해 당신과 자식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술만 마셨고, 낚시만 다녔고, 지게 한번 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묵묵히 땅을 일궜고 겨울이면 손이 얼어 터졌으며, 야산에 있는 밭을 매다가 뱀에 물리기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못난 당신과 우리 자식들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의 손길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존재가 자식들에게 이렇게 기억되는 것은 남자의 입장에서는 가슴 철렁한 일이다. 차라리 아버지가 전쟁터에 나가 전사했다면 Y씨는 아버지를 오히려 그리워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때 전사자로 인해 미국 어린이의 20%가 ‘아버지 없는 아이’로 등록되어 정부의 도움을 받으며 자랐으며 이들에게는 전사한 아버지가 영웅으로 기억되어 있다.
지금은 미국 청소년의 36%가 아버지 없는 아이들로 2차대전 때의 두배에 육박하고 있다. 아버지가 죽은 것이 아니다. 자의적으로 생이별한 아버지들로 주로 이혼과 혼외정사로 빚어진 결과다. 요즘 결혼식장에서 아버지 없는 신부의 핸디캡을 커버하기 위해 신랑신부가 함께 입장하는 새 풍조가 생겼지만 앞으로 이 현상은 날이 갈수록 더 늘어날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 없이 자식을 키워도 당당하게 살 자신이 있다고 믿는 여성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몇 년 전 TV에서 방영된 인기 연속극 ‘머피 브라운’이다. 주인공인 직장여성 머피 브라운은 혼외정사를 통해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다. 결혼생활은 부담스럽고 아이는 키우고 싶은 여성이다. 당시 댄 퀘일 부통령이 미국의 결혼 풍토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이 프로를 비난했다가 혼이 난 적이 있다. “아버지는 필요하다. 그러나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니다”라는 시대가 이미 다가와 있다. 더구나 정자은행 등으로 아버지의 중요성이 약화되고 있다.
아버지 노릇하기도 힘들어졌다. 돈벌어 오는 것만으로는 불합격이다. 아기 기저귀를 갈아 끼워줄 줄도 알아야 하고, 부엌일도 거들어야 하고, 아이들 숙제도 도울 줄 아는 가정적인 아빠가 이 시대의 모범남성이다. 그런데 왜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이 가정적인 아빠들이 가정을 버리는 현상이 더 늘고 있는지 사회가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내가 죽은 다음 나는 자식들에게 어떻게 기억되는 아버지일까. 시인 Y씨의 아버지처럼 비참하게 기억되지는 않을까. 아버지날에 아버지들이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숙제라고 생각한다.
이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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