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idental Encounter
최정<화가>
추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감상하여야 하는지를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찍찍 그어놓고 이리저리 뭉개놓은 색과 선이 무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편하게 보세요. 어지럽다 느끼면 어지러운 것이고 고요하다 느끼면 고요한 것이고 정열적으로 보이면 정열적인 것이며 차갑게 느끼면 차가운 것이라고 보세요. 이런 정도로 설명을 주며 무슨 도움이 될 방법이 없나 자꾸 생각해 보게 된다.
이렇게 많은 일반인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추상이 실은 현대 미술에서는 아주 기초이며 클라식 한 장르이다. 사실주의 19세기 말, 이십세기 초에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와 마티스(Matisse)를 거쳐가며 차츰 구상이 추상의 이미지로 발전되어 갔다. 이차 대전 중, 많은 화가들이 파리를 탈출해서 뉴욕으로 이주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룹들이 모여 추상표현주의를 발전시켰다.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재스퍼 죤스(Jasper Johns) 등은 평면체의 화폭 위에 일상에 쓰이는 물건들을 붙이고 덧대 그림의 한 일부로 발전시키고 마그 로뜨코(Mark Rothko)는 물건의 형체가 전혀 없는, 단순한 네모꼴의 색감만을 대비해 따스함과 영적인 느낌, 위로 받고 이해를 나누는 느낌의 순수추상을 자리잡게 했다.
중학교 삼 학년 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잡지에서 우연히 로뜨코의 그림을 보았다. 그 그림은 이제까지 내가 보아온 어느 그림과도 달랐다. 모네, 고호, 마티스를 뛰어넘는 공간이, 그 섬세하고 연연한 느낌을 전하며 나에게 손짓을 했다. 로뜨코는 말하자면 내 첫사랑과도 같았다. (그런데 사람의 느낌이란 결국 서로 통하는 것인지 시인 최 영미, 그리고 황 동규의 시에서 로뜨코에 향한 시를 쓴 것을 보았다.) 그 후 살면서 많은 이를 만나고 헤어지듯 많은 화가의 그 각각 독특한 매력에 홀려 라우센버그나 죠셉 부이(Joseph Beuys), 안소니 타피에(Antoni Tapies), 올덴버그(Oldenberg)와 수잔 로센버그(Susan Rothenberg)를 좋아하며 작업을 했다.
그런 어느 날, 싸이 투암블리(Cy Twombly)를 만나게 되었다. 미술 잡지였다. 한 페이지 가득, 그의 그림이 있었는데 마치 백묵가루 잔뜩 뒤집어 쓴 칠판 같은 느낌의 화폭 정 가운데 중심에 작은 흘림글씨로 Cy 라고 써 있었다. 선은 자유롭고 섬세하며 마치 한 마디의 유모어처럼 장난 같으면서도 진지했다. 빈 공간은 비단처럼 섬세하고 리넨처럼 풋풋한, 많은 사연을 간직한 채 신비롭도록 조용한, 우아한 기품이 있었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인간은 세월과 거리를 넘어서 함께 느끼고 나눌 수 있는 영적인 그 무엇을 가진 존재라는 말이 절실히 다가왔다.
그러나 한편으론 죽을 때까지 노력해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각자 능력의 폭이란 게 있는 듯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과히 난해하지도 않은 나의 그림을 보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여 난감해 한다. 자연스럽게, 거의 무심하도록, 한치의 껄끄러움도 없이 쓰윽 내려그은 선, 바로 그 자체로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 정적과 활기, 우연한 만남과 지고한 추구..를 말하고 싶다. 무심하게 끄적여 논 낙서 같은 선들이 보일 듯 말 듯, 들릴 듯 말 듯, 많은 사연을 전하는 속삭임과도 같은 바탕배경 앞에서, 시각적으로도 꼭 맞아떨어지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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