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기자
겨울은 두 개의 세계를 마주보게 한다. 하나는 우리가 마주보는 겨울. 입김이 호호 불어지고, 장갑과 외투, 썰매와 눈보라등… 우리가 바라보는 외적인 겨울이다. 다른 하나는 겨울이 우리를 마주보게 하는 겨울. 겨울은 침묵하고 싶고, 추위 때문에 생기는 내면의 반향, 반추의 계절이다. 그것을 내적인 세계라 해도 좋고, 동경·꿈의 세계라 해도 좋다. 사람들은 겨울에 자신들만의 꿈을 꾼다. 추위가 안기는 것은 살갗의 고통이지만 눈보라의 추위가 안기는 세계는 무한한 내면의 동경으로 이끌어 가기도 한다.
겨울의 음악하면 떠오르는 것이 영화 ‘지바고’의 음악들이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겨울이 조금 과장되고 있지만 겨울의 아름다움, 겨울의 고통, 겨울의 절망감등이 이처럼 잘 표현된 영화, 영화음악도 없을 것이다. 지바고가 펼쳐내는 설경과 함께 듣는 음악… ‘스노우 플레이(러브스토리)’등을 들을 때만큼 겨울기분이 나는 때도 없다.
겨울에는 물론 베토벤의 ‘로망스(F장조)’라든가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 그리고 패커벨의 ‘캐논’등을 듣는 것도 진한 겨울 서정 속으로 인도 받곤 한다. 아마도 현의 떨림에서 번져나오는 잔잔한 미립자… 무언지는 알 수 없지만 겨울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 무의식속 수만년 겨울바람이 안겨주었던 회한들이 어느덧 현의 떨림 속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왜일까. 유독 바이올린에서 울려나오는 한 소절 소절이 겨울에 더 절실하게 마음에 울려오는 것은… 겨울이 주는 추위때문일까, 아니면 겨울이 주는 절망감, 낭만감 때문일까…
겨울이 되면 갑자기 음악가들이 부러워지곤 한다. 턱시도를 입고 지휘를 하는 지휘자가 아니라 바이올린 한 대, 개나리 봇짐을 등에지고 세계를 유랑하는 악사들…. 모진 추위, 비정한 세계의 배신 속에서 오직 음의 울림 하나에 의지하여 진실을 울리는 가난한 연주가… 남루한 옷을 입고 추위에 얼어붙는 손을 호호불며 얼어붙은 마음을 위하여 음악을 연주하는 그 손이야말로 축복받은 손이다. 세상은 땔감이 없어서 얼어붙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얼어붙고 있다.
겨울이 되면 쇼팽의 ‘겨울바람’에서 부터 그리이크의 ‘솔베이크의 노래’, 슈베르트의 연가곡(겨울 나그네)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겨울의 곡들이 우리의 귀를 기다리고 있다. 특히 겨울을 노래함에 있어 그 왕자들은 북극의 작품들이다.
북극하면 흔히 뭉크의 그림, 그리고 입센의 희곡들, 시벨리우스, 그리이크등이 떠오른다. 특히 입센의 ‘페르귄트’는 그리이크의 극음악으로도 널리 알려진 방황과 동경이 그려진 가슴 뭉클한 곡이다. 이 작품은 마지막 곡 ‘솔베이크의 노래’로도 세인의 가슴 속 깊이 각인되어 있는 작품인데 떠나간 애인(페르귄트)을 그리는 솔베이크의 인종의 세월이 너무도 가슴을 치는 곡이다.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1번(Winter Dream)또한 겨울에 듣기에 안성맞춤인 곡이다. 라도가… 드넓은 북극 호수… 한 복판의 얼어붙은 빙판 위에서 신나게 얼음을 지치는 듯한 경쾌함과 순박한 겨울서정이 담뿍 담긴 이 곡은 한 장의 카드와 같은 작품이다.
북극의 예술은 대체로 초월적이다. 물론 그것은 모진 현실이 내적 안식에 대한 동경으로 바뀌었기 때문인 모르지만 어딘가 순결하고 신비에 차있는 면이야말로 북극예술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 할 것이다.
겨울이 외롭고 쓸쓸한 분들에게는 북극의 음악들을 권하고 싶다. 그중 순수 교향곡으로서는 최고의 작품이 시벨리우스의 교향곡들이다. 시벨리우스는 7편의 교향곡을 남겼는데, 그중 1,2,3,5번은 누구나 한번쯤 꼭 들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곡들이다.
4곡 모두 겨울(북극)의 아름다움(승리)을 그리고 있는데,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을 아직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음악의 깊은 내면적 앙금, 진실의 표현을 느껴보지 못한 자들이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질적인 면에서 20세기 음악가들이 최고로 선정한 바 있는 음악들로서, 비록 북극을 소재로 하고 있기에 암울함과 추위가 감돌고 있지만 아마도 음악을 통해 바라 볼 수 있는 색이 존재한다면 바로 시벨리우스의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음악적 색채가 뛰어난 작품들이다.
음악(귀)으로 볼 수 있는 색은 단 한가지도 없지만 만약 있다면 그것은 한가지 색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투명한 현(絃)의 떨림과 같은 빛의 원색이겠지만 북극의 음악과 같은, 아마도 절실함이 더해져 죽어지고 다시 태어나는 초월적 희망, 겨울이 전하는 눈처럼 흰색이 아닐까…
오로라의 신비가 젖어있는 교향곡 1번(2악장)… 눈발이 쏟아지는 벌판을 한없이 걷는 듯한 2번 교향곡… 폭발하는 눈사태 3번… 5번의 깊은 침묵… 그리고 피안으로의 부활(희열)… 모두가 북극의(시벨리우스) 교향곡이 내리는 축복의 시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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