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추수감사절 식탁은 언제나 넘치도록 풍성하다.
10년이 넘게 우리 가족과 동생네 가족은 하시엔다 하이츠에 있는 언니네 집으로 땡스기빙 터키를 먹으러 가고, 언니는 먹을 것을 산더미처럼 차려놓고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 가족이 일년중 가장 많이 먹는 날. 이날 하루만큼은 다이어트니, 칼로리니, 몸무게니 하는 잡생각을 아예 접고 오로지 먹는 일에 열중한다.
“일찍 와라, 응? 빨리 와서 점심도 먹어야지”
몇 번이고 다짐하는 언니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대낮부터 가보면 식탁과 부엌은 이미 잔칫집이다. 금방 구워낸 군고구마와 군밤이 누가 다 먹나 싶게 잔뜩 쌓여있고, 과일이 배, 감, 귤, 종류대로 깎아져 있으며, 오징어와 비프저키도 과반에 수북하다. 때론 빵집에서 사온 각종 빵들과 과자, 떡집에서 사온 떡들마저 한 상을 차지하고, 냉장고엔 수많은 음료수, 냉동실엔 아이스크림까지 종류별로 꽉꽉 들어차 있다.
그런데 이 정도는 기본이고 간식, 점심은 따로 국수상이다. 뜨거운 멸치국물에 양념장을 듬뿍 얹어 말아먹는 언니의 국수는 총각김치와 함께 환상의 별미라 아무리 배불러도 이걸 건너뛰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국수를 먹고 나면 언니는 또 새우튀김을 한 소쿠리 튀겨낸다. 오며가며 심심풀이로 집어먹으라고... 먹을걸 유난히 밝히는 아들아이가 일기장에까지 적어놓고 땡스기빙 데이를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니는 형부가 살아계셨던 동안에는 터키를 굽지 않았다. 형부의 친구들이 모이는 만찬에 늘 온 가족이 초대받았기 때문에 따로 구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8년전, 젊은 나이에 형부가 돌아가시고 난 후, 그리고 13년전 동생네가 이곳으로 이민온 후, 언니는 자신이 직접 터키를 굽고 우리를 부르기 시작했다.
터키가 오븐에서 황금빛으로 구워지고, 그걸 끙끙대며 들어내 식탁에 올린 언니가 큰 나이프와 포크로 터키를 자르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때로 형부 생각이 난다. 형부가 계셨으면 두 처제와 동서들 앞에서 폼을 잡으시며 멋지게 자르셨을텐데...
언니는 올해 처음 터키와 함께 햄도 구웠다.
버터를 발라구운 터키와 달짝지근한 햄, 찹쌀밥 스터핑, 매쉬드 포테이토와 그레이비, 빵, 샐러드, 옥수수에 얌까지 한 상 가득 오른 식탁에 언니와 두 조카, 동생 내외, 우리 내외, 동생의 아들과 우리 아들, 모두 9명이 둘러앉았다. 이런 식탁을 앞에 놓고도 ‘감사’를 모른다면 인간이 아니지. 올해는 조카 크리스틴이 대표로 감사기도를 했다.
해마다 이날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두 아들이 눈에 띄게 커 가면서 식탁이 비좁아지는 것. 나와 동생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똑같은 식탁에서 터키를 먹어온 아이들은 쌍둥이처럼 무럭무럭 자라며 기어다니다가, 뛰어 돌아다니다가, 식탁 끄트머리에서 장난치다가, 몇년전부터는 정식으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았다. 이렇게 아이들은 자라고, 우리는 늙어가고, 세월은 흐르고, 인생은 깊어가는 거겠지.
다 먹고, 실컷 놀고, 밤늦게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돌아올 때면 언니는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서 나와 동생에게 한 보따리씩 안겨준다. 남은 터키와 햄, 과일들과 비프저키가 가득가득 들어있다.
내일 아침이면 얼굴이 보름달처럼 두둥실 부풀어오르겠지만, 하지만 어떠랴. 허구헌날 살찐다고 구박만 했던 몸과 입에게 일년에 한번쯤은 이런 호사도 시켜줌직하지 않은가.
언니가 차려주는 추수감사절 식탁이 너무 좋아, 나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직접 터키를 굽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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