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가을 두번째 거라지 세일 이현희씨 <사업>
▶ 가족사랑 다지며 사람 사귀는 재미까지
어디 사람과의 만남만이 인연일까. 물건을 내 손에 넣는 것도 연을 짓는 일. 사람과의 만남도 악연이 아닌 축복으로 만들 책임이 우리에게 있듯, 물건을 구입하고 사용하는 것도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스쳐갔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헤아리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껴 쓸 일이다. 그리고 더 이상 그 물건을 쓰지 않는다면 내 곁에 두고 무용지물을 만들 게 아니라 물 흐르듯 흘려 보냄으로써 꼭 필요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사람된 도리일 것이다.
이현희씨(35·사업)는 올 가을 들어 두 번째 거라지 세일을 했다. 계절이 바뀌면서 자신과 아내가 더 이상 입지 않는 옷을 챙겨 보니 옷가게 하나는 차릴 만한 양이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는 아들 재경(6)이 옷이야 말할 필요가 있을까. 재경이가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 역시 제 임자를 찾아주어야 할 것 같다. 거라지 세일을 하기 위해 대청소를 하면서 깨달았다. 한 아파트에 2년 이상 머물러 살며 또 너무나 많은 것들을 쌓아놓기만 했음을. 집이 좁다고 푸념하기보다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하고 나니 동양화에서의 여백의 미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달아진다.
지난 주말 아침의 거라지 세일을 위해 이현희씨는 아내 안나씨와 새벽같이 일어나 ‘옷 한 개에 1달러’라는 사인도 만들고 은행에 가서 잔돈도 바꾸어 놓았다. 자리를 뜨지 못할 터이니 점심 때 먹을 도시락으로 김밥도 싸고 음료수와 커피, 손님이 뜸할 때 읽을거리까지 알뜰하게 준비를 마쳤다.
평소 주말이라 해도 서로 바빠 시간을 함께 보낼 기회가 흔치 않았는데 거라지 세일을 하러 한 곳에 앉아 있다보니 아내와 밀린 얘기도 실컷 나눌 수 있었고 아빠가 함께 놀아준다고 재경이도 연신 싱글벙글이다.
차와 사람의 통행이 잦은 거리에 물건을 늘어놓아서인지 아침 산책 나온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꽤 들러 옷을 사 갔다. 거의 새 것이나 다름없는 재경이의 작은 옷을 손자녀석 주겠다며 쌈지 주머니 꺼내는 할머니를 대하자 무조건적인 사랑을 퍼부어 주시던 할아버지·할머니가 무척 그리워진다. 작업복으로 쓰겠다며 몇 벌씩 사가는 이들의 손에 들린 정든 옷가지들. 그들이 옷장에서 썩지 않고 자주 입어줄 새 주인을 만난 것이 가슴 뿌듯하다.
재경이 한복은 내놓기가 무섭게 컬렉션 한다며 젊은 미국 여인이 사갔다. 아들 칼렙을 데리고 산책을 나왔던 이웃, 재키는 책꽂이와 장난감, 그리고 요리 책까지 한 보따리 구입해 갔다. 언젠가 인연이 다 하면 또 다른 이의 손에 넘겨질 손때 묻은 물건들이 가을날의 따가운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박지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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