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은 가장 힘센 육상 동물의 하나다. 그래서인지 단군신화에서 인디언 전설에 이르기까지 곰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시튼의 동물기에도 회색곰이 한 손으로 황소를 때려잡는 장면이 나온다. 그럼에도 곰의 실상에 대해서는 잘못 알려진 바가 많다. ‘미련하기가 곰 같다’ ‘곰처럼 둔한 놈’ 등등은 곰의 실상을 왜곡하는 발언이다. 폭포 어귀에 끈기 있게 지키고 있다 번개처럼 물고기를 낚아채는 곰의 모습은 미련함이나 어리석음과는 거리가 멀다.
세계 금융의 중심 뉴욕 월가 초입에는 씩씩한 황소 상이 서 있다. 호황을 염원하는 투자가들의 바람이 담긴 황소다. 월가에서는 활황 장세를 ‘불 마켓’(bull market), 불황 장세를 ‘베어 마켓’(bear market)이라고 부른다. 누가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그렇게 불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지 ‘불 마켓’은 황소처럼 앞만 보고 뛰라는 뜻에서, ‘베어 마켓’은 곰처럼 흉폭한 장세라는 뜻에서 붙여지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다. ‘베어 마켓’에 관해서는 ‘곰을 잡기도 전 곰 가죽부터 판다’는 속담에서 나왔다는 설과 돈을 다 잃어 알거지가 된 상태(bare)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두달째 폭락을 거듭하던 미 주가가 지난주부터 폭등세로 돌변하고 있다. 다우는 1주일 새 1,000포인트 이상 상승, 8,700선을 여유 있게 회복했다. 하이텍이 몰려 있는 나스닥이나 미 증시를 대표하는 S&P 500지수도 이와 비슷한 폭으로 올랐다. 눈물과 탄식으로 세월을 보내던 투자가들의 얼굴에 오랜만에 웃음이 돌아왔다. 주가가 바닥을 쳤으며 다시 예전 같은 상승세를 회복할 것이란 낙관적 관측이 다시 신문 지상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주가가 왜 오르느냐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기업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기 때문이라는 설, 자유무역 확대를 위한 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라는 설, 심지어는 펜실베니아에서 광부 9명이 모두 무사히 구출됐기 때문이라는 설 등 갖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증시의 가장 큰 특징은 인생살이와 같이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도 일직선이 아니란 점이다. 올라갈 때든 내려갈 때든 그 폭이 크면 클수록 그에 비례해 반락과 반등 폭도 크다. 지난 1주일간 반등 폭이 컸던 것은 그동안 폭락세를 감안하면 놀랄 일은 아니다. 이것만으로 증시가 진정한 바닥에 와 있다고 점치기는 이르다.
전문가들은 하락 장세 속의 반짝 상승을 ‘베어 마켓 랠리’(bear market rally)라고 부른다. 호황 장세 때보다 더 난폭하게 급등하는 것이 ‘베어 마켓 랠리’의 특징이다. 지난 1주간의 상승은 전형적인 ‘베어 마켓 랠리’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베어 마켓 랠리’는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씩 간다. 진짜 호황 장세가 되돌아온 것이라는 착각을 심어주기 안성맞춤이다. 증시가 긴 상승세를 타 다우가 10,000선에 접근하면 "이제야 미국 경제가 바른 길로 들어섰다"는 무지개 빛 전망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 때가 바로 주가가 내리막길을 다시 걷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곰은 하나라도 더 많은 투자가를 잡아먹고 싶어한다’는 월가의 격언이 있다. 곰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어리석고 둔한 동물이 아니다. 지금의 주가 상승은 미국 경제와 증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 모두 해결됐음을 알리는 신호가 아니라 곰이 순진한 투자가들을 잡기 위해 쳐놓은 덫이라 보는 게 정확하다.
지난 2년 반 동안의 주가 폭락은 사상 유례 없는 것이다. 장부상 수치이기는 하지만 7조 달러가 사라졌다. 미 연 GDP가 10조달러임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액수다. 이런 거액이 증발했는데도 미국 경제가 온전하리라 생각한다면 이는 너무나 희망적인 관측이다.
언젠가 증시는 바닥을 친다. 그러나 그 때의 사회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다를 것이다. 주식으로 패가망신한 사람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경제를 망친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목소리가 전국에 울려 퍼지며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때, 그 때가 주식을 사야할 때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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