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하탄 차이나타운 캐널 스트릿에 가면 ‘마리아’라는 빵집이 있다.
허름하면서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거리에 있는 이 집의 빵은 만두고 찐빵이고 케익이고 모든 종류가 겁나게 크다. 간단한 한끼 식사가 될 정도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대신 가격은 엄청 싸다. 보통 가게에서 파는 빵의 반 값 정도다.
그곳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은 99% 중국인이다. 다들 남루한 작업복이나 허드레 옷을 입었지만 표정만은 어느 누구에 뒤질세라 행복해 보인다.
예쁘고 깔끔한 인테리어도 아니다. 식탁이고 의자고 그저 찻잔을 놓고 자리에 앉으면 된다는 용도로 놓여진 싸구려다. 특이한 점이라면 빵집 치고는 광장처럼 실내가 넓고 언제 가도 사람들로 넘쳐 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후 6시 반이 넘으면 사람들은 더욱 많아진다. 다들 빵을 사는 것도 커피를 마시는것도 아니면서 카운터를 향하여 일제히 고개를 돌리고 무언가 기다리고 있다. 이 빵집은 7시30분에 문을 닫는데 정각 7시가 되면 시계를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카운터로 달려가 우르르 줄을 선다.
하루종일 팔다 남은 빵을 50% 정도 저렴한 가격으로 팔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의 김밥 끄트머리처럼 파운드 케익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를 터질 듯 가득 담은 커다란 비닐 한 봉지에 넣어 1달러에 준다.
모양이 반듯한 것이든 자투리든 김밥은 김밥이고, 파운드 케익은 파운드 케익이다.
어렸을 때 배곯아 본 기억도 없는데 왜 이렇게 풍성한 먹을 것을 보면 마음이 흐뭇해질까. 별로 많이 먹는 체질도 아니면서 넘쳐나는 인심을 보면 마음이 따스해진다.
그런데, 왜 한인타운에는 수많은 음식점, 제과점이 있으면서 그날 하루 장사를 마치면서 남은 재료나 빵, 밑반찬을 파는 곳이 없는가?
어차피 빵은 다음날 새벽 새로 만들어야 하고 반찬 중에도 다음날이면 신선해지지 않는 것도 있을 텐데 말이다. 맞벌이 부부나 독신자 경우 퇴근길에 이러한 식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한국 식당이나 델리, 빵 가게의 영업시간이 밤늦게까지, 혹은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많아서인가. 아니면 문닫는 시간이 되면 음식이 늘 모자라는 것인지, 그러나 그날 따라 재료가 시장에 엄청 싸게 나와서 구입비가 절약된 만큼 고객에게 나눠주고 싶은 때는 없을까?
유명 한국 가게에서 매일 일정한 시간에 50% 할인가격으로 식품을 세일한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즐거워 할 것인가. 넉넉한 마음을 나누어주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다 같이 기쁨을 맛볼 것이라 생각해본다.
마치 빵 속에 작은 생활의 지혜를 담은 쪽지를 써넣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누어주는 빵장수 야곱처럼.
1989년 출간된 노아 벤샤의 ‘빵장수 야곱’에는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빵장수가 나온다. 야곱은 이른 아침마다 오븐에 불을 지피고 첫 반죽이 부풀어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신과 우주, 삶에 대한 명상을 즐기며 자신의 생각을 쪽지에 적어놓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명상 쪽지 하나가 빵 반죽 사이에 들어가게 되고 이것을 빵 속에서 발견한 여인은 위안을 얻게된다. 그 이후 모든 사람의 청에 의해 빵 속에 들어간 ‘지혜로운 사람은 어디서나 교사를 만난다’, ‘당신 자신만은 왜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등의 쪽지는 사람들에게 평안과 자기 성찰의 기회를 주게 된다.
이처럼 한인타운에도 빵 속에 쪽지는 안 넣더라도 마음씀씀이가 여유 있는 가게가 많아졌으면 한다.
빵을 담다가 바닥에 떨어뜨렸거나 커피를 잘못 시켰을 때 두 번 지불하게 하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고 흔쾌히 웃으면서 새것으로 다시 담아주는 그런 친절, 낯선 사람이 건네준 정으로 인해 이민의 삶에 애착을 갖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그런 가게가 필요하다.
한인들이 그저 빵을 사가는 것이 아니라 행복과 사랑, 인생을 사가는 그런 가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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