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로작가 조명원옹 개인전
▶ 한국풍경, 미국 경치 50여점 17일부터 로터스 갤러리
“사진이란 것에 특별히 고상한 철학이나 사상을 담지는 않지요. 다만 일평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친구라고 할 수 있지요”
26일이면 87세를 맞는 조명원 옹은 평생을 사진과 함께 걸어왔고 지금도 그렇다.
함흥상업을 졸업한 1934년 화신백화점에 입사해 월급을 타자마자 달려간 곳은 카메라상이었고 할부로 산 120원짜리 ‘호스테르비’ 카메라는 당시 넉달치 월급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사진을 배우기가 힘들자 직장을 그만두고 동경으로 건너간 그는 일본대학 상경학부에 재학하며 틈틈이 광학회사인 아사히에서 일을 했는데 이 때 수많은 카메라를 접하고 시야를 넓혔다. “워낙 사진학교를 가려고 했는데 마땅한 학교기관이 없어 그냥 상과로 진학했지요”라는 조 옹은 아사히에서 일하는 기간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그는 1939년에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사진연감에 작품이 실려 100여명의 일본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 화제가 되기도 했고 1940년부터 해방때까지 남만주철도회사에 몸담을 때도 카메라를 놓지 않아 사내 사진전을 휩쓸었다.
1946년 한국사진예술연구회 창립 멤버로 한국내 활동을 시작한 그는 한국전이 발발하자 육군본부에 정보팀과 대구 HID본부에서 사진요원으로 활약했다. 전후 56년 월간잡지 ‘사진문화’를 창간해 사진의 대중화를 시도한 그는 63년에 중앙정보부 기술연구실 사진화학연구관으로 활동하고 66년 한국최초로 한국사진연감을 발행했다고 한다. 조 옹은 “당시 국내에서 양질의 종이도 귀한 처지였지만 아시히 연감에 뒤지지 말자는 생각에 많은 돈을 쏟아 부은 기억이 난다”며 “연감을 내고 그 여세로 월간 ‘사진예술’까지 발행했었다”고 회상했다.
그후 한국사진학원에서 전임강사로 후진을 양성하던 그는 86년 도미해 그 이듬해인 87년 한인 사진동호회인 ‘할리트론 사진 클럽’의 고문으로 매달 촬영대회를 열었고, 97년부터 현재까지 미서부사진작가협회에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직도 주말이면 버스에 몸을 싣고 LA인근으로 촬영을 다니는 조 옹은 “젊은 날 동경과 선망으로 다가섰던 사진과 어느덧 70년 가까이 함께 왔다”고 웃으며 “구십이 다 되어가도 기운이 솟는 것은 아마도 사진이 그 이유인 것 같다”고 전했다.
조 옹은 지난 17일부터 3가와 옥스퍼드 관음사에 자리한 로터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벌써 20년 가까이 된 한국의 고즈넉한 풍경과 최근 찍은 미국의 경치가 50여점 담긴 이 전시는 87번째 생일인 26일까지 계속된다.
<이재진 기자> jjrh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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