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희 <한경대부교수 아메리칸대 파견 경실련 예산 감시위원회 위원장 >
’정주영 회장은 돈지갑이 없고, 벤처 사장은 땅이 없다’, 산업 사회를 이끈 구경제와 정보화 사회를 이끈 신경제(New Economy)를 대비시킨 적절한 표현이었다. 태평양을 넘나들며 한국과 미국에서 금융산업과 함께 신경제의 축을 이루었던 벤처산업에서 최근에는 계속 부실, 부패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 극단적인 모습이 한국의 ‘패스 21’ 사업이고 미국의 엔론(Enron)이다. 이러한 현상은 노동과 자본이 결합되어 물건을 만드는 산업사회와 달리 벤처 산업이 가지고 있는 특성의 하나로 인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특히 기업인의 부도덕성, 정치권의 직간접적인 지원, 회계평가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결합할 때 최근의 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엄청난 결과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
산업사회에서는 열심히 공장을 돌리면 되는 시기였다. 경제동물이라는 비난을 받을 지라도 부지런히 공장을 돌리면 되는 시기였다.
그러나 신경제는 지식에 근거한 산업구조이다. 창조와 아이디어가 중시된다. 수 천만 평의 공장과 수 만 명의 직원을 가진 자동차 회사보다 몇 명의 직원이 모인 소프트웨어의 주식 가격이 더 높은 현상이 나타났다. 1년 동안 자동차를 수출하는 것보다 영화 한 편의 수출로 버는 돈이 더 많은 시기가 되었다. 1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버는 돈보다 며칠 간 주식시장에서 잘만 돈을 굴리면 더 많은 돈을 버는 시기이다.
그런데 지식산업의 경우 그 가치를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즉 시장에서 생산된 물건이 바로 사고 팔리면서 가격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력의 인정에 의해 회사가 평가되기 때문에 수익모델이 확정되는데 시간이 소요된다. 바로 여기에 인위적인 조작이 가능하다. 정치권에서 특정회사를 인정하는 말 한마디가 그 회사의 미래가치를 바꾸게 되고 주식 가격에 바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기업의 입장에서 정치권에 로비를 할 이유가 된다. 특히 그 회사를 평가하는 평가회사의 공정성과 객관성도 문제가 된다. 아무리 정교한 평가 모델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인간이 하는 평가이기 때문에 오류와 조작이 있을 수 있다. 회사의 평가가 미인대회의 평가와 같아서 누군가가 좋다고 하면 마구 그리로 의견이 쏠린다. 그래서 벤처가 가는 곳에 정치권의 지원과 이에 대한 정치헌금이 따라가고, 이를 평가하는 회계법인의 부정이 따라 가게 된다.
미국 7위의 기업, 2만 명의 직원, 한 주당 83달러의 거래되던 기업 가치가 하루 아침에 파산선고를 하고 한 주당 25센트의 가치로 하락하는 현상이 이러한 모든 허상 속에서 가능했던 인위적인 구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번의 엔론 회사 파산에 미국인이 더욱 경악하는 것은 직원들에게는 주식매각을 못하도록 하면서 정작 회장은 350회에 걸쳐 주식을 매각하여 1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주식 조작의 과정에 대중의 가치를 보장해주어야 할 회계법인이 장부조작을 묵인하였을 뿐 아니라, 부실 장부를 폐기함으로써 이를 사실상 조작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주의는 생산력과 무관하게 투기적인 카지노 자본주의로 변질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자본주의 기업의 운영 원리가 같다보니 발생하는 문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볼 것을 그것을 치유하고 책임을 묻는 사후적인 과정이다. 한 건의 에피소드로 끝날 것인지, 분명히 책임을 묻고 이러한 계기를 통해 더욱 강한 사회로 가기 위한 새로운 제도를 만들 것인지 모두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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