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멜이 기르는 붉은 색 고양이 아즈라엘(Azrael)은 가가멜의 집으로 나타나는 무자비한 자유 시장 속에서의 노동자를 상징한다. 아즈라엘은 소리를 낼 수없으므로 불평할 수가 없다. 이것은 불평할 수 없는 노동자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그는 그의 임금을 교섭할 수도 없다. 아즈라엘은 주인이 주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먹을 수밖에 없다. 가가멜보다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는 사실은 가가멜이 부르주아인 반면 그는 프롤레타리아라는 것을
은유한다. 아즈라엘은 착취당하고 억압받는다. 그는 그의 주인을 위해 사냥을 하고 싸우며 목숨의 위협을 감수한다. 그러나 아즈라엘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만한 지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수세기 동안 노동자들이 교육의 기회에서 소외된 채 자신의 고용주를 위해 일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운명 속에서 고통받아 왔던 것과 유사하다.
스머프 마을의 유토피아적인 조화를 위협하는 서구의 침입으로 종결되는
시나리오는 결국, 80년대 중반부터 후반에 걸친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이 소련 연방의 궁극적인 종언을 예고 함을 은유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Peyo는 우화적인 동화의 형식을 빌어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을 재현하고자 시도했다고 볼 수 있다. "스머프"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세계를 조명함으로서 뛰어난 판타지 문학으로 성공한 이 만화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유토피아적인 이상을 추구함에 있다. 이것이 비록 현실 세계에서 이뤄지기엔 너무 개연성이 없을지라도, 지금은 그것을 상상할 수는 있다.
어린시절 즐겨보았던 " 개구장이 스머프" 그땐 만화를 그냥 만화로 가볍게
보았지만, 지금 다시보는 만화속엔 마르크스주의가 있다.
80년대 시리즈의 후반에 새롭게 등장한 스머플링(Smurflings)과 같은 다양성을 보여주는 캐릭터는 이상적인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이데오로기를 숨긴채 인기와 판매력을 증가시키려는 현실 세계의 상업적인 이해 관계의 유입이었음을 알아버린 내 눈과 귀는 어느새 동심밖으로 밀려나와 버린걸까?
고전적인 마르크스이론에서 사회주의는 낮은 단계, 공산주의는 높은 단계의 이념으로써, 후자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이데올로기다. 따라서, 공산주의 사회란 완전 평등한 사회, 모든 생산 수단과 재산을 공유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들 자신들이 공산주의라는 말보다 사회주의라는 말을 더 즐겨 쓰는 이유는 그 단계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는 의미이며, 궁극적으로 공산주의사회 건립이 그들의 이상이자 꿈이라는 뜻이다.
공산주의라는 용어는 자유 민주주의와 대비시키기 위해, 또, 조금은 비꼬아서 우리가 오히려 더 많이 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민주주의도 우리가 표방하는 이상일 뿐이지 완전한 민주주의가 실현 된 곳은 아직 이 지구 상 어디에도 없긴 하지만......
소련과 동구는 자신들이 꿈꾸던 공산주의를 이루기는 커녕 완전히 붕괴되어 산산 조각이 났고, 옛날의 나라 이름들은 역사 속에서나 존재하게 된 지 어언 10년이 넘은 지금, 혼란과 가난에 빠져 시장경제에 적응하느라 고단한 오늘을 살고 있는 자신의 후예들을 보며 지하의 마르크스는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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