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의 태두 퇴니스는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회가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하나는 혈연과 지연으로 맺어진 공동사회며 다른 하나는 구성원 공동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이익사회다. 공동사회 구성원간의 관계는 운명적이다. 태어나고 싶은 때와 장소를 골라 태어난 사람은 없다. 부모도 자식도 마음대로 고를 수 없다. 반면 이익사회는 자유계약에 맺어진 사회다. 공통의 이해관계가 남아 있는 한 존재하고 사라지면 그와 함께 사라진다. 전자의 대표가 가정이라면 후자의 표본은 기업이다.
이 두 가지 사회에는 판이한 원리가 적용된다. 공동사회에서는 구성원의 이용가치가 사라졌다고 관계를 끊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어린 자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쫓아내거나 늙은 부모가 힘이 없다고 돌보지 않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익사회에서는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얼마든지 갈라설 수 있다. 자기가 다니는 회사가 전망이 없다고 판단되거나 다니기 싫어 사표를 냈을 때 고용주가 막을 방법은 없다. 고용주도 직원이 보수에 상응하는 업무를 수행하지 못한다고 판단하면 내보낼 수 있다. 해고가 가능한가 아닌가가 이 두 사회를 가르는 기준인 셈이다.
해고와 실직이 사회문제로 등장한 것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다. 전통과 혈연, 지연을 바탕으로 한 농업사회가 해체되고 생산관계가 고용주와 피고용인으로 바뀌면서 대량 실직이라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박봉으로 그날그날 살아가던 노동자들이 경기가 나빠져, 혹은 고용주 사정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면 당장 생계가 막막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19세기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열화와 같이 일어난 사회주의 운동의 뒤에는 모든 것을 ‘차디찬 현찰 관계’로 바꿔 놓은 이익사회에 대한 반감과 구성원간의 아픔을 함께 나누던 공동사회에의 향수가 깔려 있다.
미국의 실업률이 치솟고 있다. 11월 미국 실업률은 10월에 이어 다시 큰 폭으로 증가, 5.7%를 기록했다. 6년만에 최고다. 전문가들은 과거 불황의 예를 볼 때 실업률이 7~9%까지 오르는 것이 보통이었다며 내년 초 경기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연말까지는 계속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인사회에서도 취업난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명문대를 나온 한인 유학생 절반이 직장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가 없어 애태우는 한인 부모들이 많다. LA 한인타운에서 가장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은행은 작년에 비해 채용 규모를 절반으로 줄였는데도 구직 신청자는 2배로 늘어나고 있다.
미국은 선진국가 중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 가장 쉬운 나라다(경제학자들은 이를 ‘노동 시장의 탄력성이 풍부하다’고 부른다). 유럽만 해도 사람 하나 내보내기가 쉽지 않다. 또 실직해도 베니핏이 좋아 일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월급의 75%가 나오며 병원비는 무료다. 직장에 나가 봐야 50%가 세금으로 나가니까 굳이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 이런 나라의 특징은 실업률이 높다는 점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실업률이 10%가 넘는다.
실업은 당하는 사람에게는 고통스럽지만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80년대 말 일본이 세계 경제를 주름잡았을 때 일본식 종신고용이야말로 서방국가가 배워야 할 경영방식이란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 일본 경기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실업은 시그널이다. 그 분야에서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는 더 이상 소비자들이 원하지 않으니 딴 일을 찾아보라는 시장의 메시지다. 실업을 억지로 막는 것은 밥 먹기를 원하지 않는 손님에게 억지로 식사를 권하는 것과 같다. 그보다는 손님이 지금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 빨리 살피는 것이 현명하다. ‘나는 왜 취직이 안될까’ 한탄하기보다는 시장이 원하는 자격을 스스로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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