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적 편견을 떠나 사랑을 찾아온 미국 땅에서 모하메드란 이름 때문에 고통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슬람교도 모하메드 미아(39)씨와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맺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온 문영숙(46)씨는 경기가 나빠져 늦게까지 있어봐야 매상이 오르지 않는다며 평소보다 3-4시간 일찍 집에 들어오는 남편이 처음에는 반가왔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던 남편이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듯한 얼굴이 돼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남편이 증오범죄의 대상인줄 몰랐다는 문씨는 "이제 겨우 친정식구들에게 환영받는 사위가 됐고 경제적 여유도 생겼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해 테러참사이후 주변으로부터 당한 위협을 짐작케했다.
모하메드와 문영숙씨가 인종적 위협을 받기 시작한 것은 테러참사가 발생한 날부터. "매일 농담을 주고받던 단골 손님들까지 ‘네 이름이 모하메드니까 너도 테러리스트 집단’이라며 ‘조국으로 돌아가라’고 손가락질을 해댔다"며 악몽같은 순간을 되내이는 모하메드는 아직도 경계심을 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슬람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은 방글라데시에서 왔고 테러리스트와는 아무 상관없다고 설명하며 하루빨리 이 상황이 끝나길 기도했던 모하메드에게 테러발생 10일째 되던 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여느 때처럼 이슬람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마켓에 나와있는데 저녁 7시께 갑자기 나타난 한 남자가 손에 칼을 쥐고 마켓밖에 서서 "목을 베어줄테니 밖으로 나오라"고 위협했던 것.
모하메드는 이 순간은 "집과 마켓등 그동안 이룬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당장 미국을 떠나고 싶을 정도였다"며 무고한 테러피해를 호소했다.
"그 동안 남편이 감수했을 욕설과 위협을 생각하면 무서울 따름"이라는 문씨가 모하메드씨를 만난 건 1988년.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는 것이 전화번호를 잘못 눌러 당시 방글라데시 외부부 직원으로 한국에 파견나왔던 모하메드 미아와 통화를 하게됐다.
잘못걸린 전화로 친구가 되고 사랑을 쌓아 결혼을 약속했다. 이후 부모는 방글라데시 출신이란 사실로 결혼을 반대했고 또 방글라데시 대사관은 현지여성과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아 둘은 결국 사랑을 택해 미국행을 결심했다. 94년 LA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문씨 부부는 아들도 낳고 조그만 마켓과 2층짜리 주택도 구입하는 등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갔다.
이번 테러로 어이없는 피해를 당하고 있는 모하메드와 문영숙씨 부부는 "그래도 자신을 보호해주겠다는 손님들을 위안 삼아 열심히 살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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