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물, 징검다리, 반딧불, 서커스단, 피에로, 함중아의 노래 ‘내게도 사랑이’.
낡은 말들이다. 낡음이란 곧 사멸이다. 사라지는 것은 사물과 이름 만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의미까지 함께 사라진다.
돌아서서 애써 그 낡고 잊혀진 것들을 다시 불러낸다. 그만큼 그립다는 말이다.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립고, 그들의 웃음과 아픔이 소중하고, 그들의 꾸미지 않은 솔직함이 보고 싶고, 작지만 진실한 사랑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불후의 명작> (감독 심광진)은 그것들을 웃음 속의 슬픔과, 슬픔이 배인 웃음에 담아 놓았다. 에로비디오 감독 인기(박중훈)의 초라한 현실과 대필작가로 자기 이름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여경(송윤아)의 아픔조차 부끄러운듯 숨는다. 에로 배우와 인기, 인기와 여경, 여경과 인기의 선배로 연결되는 어긋난 사랑조차 큰 신음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들은 서투르다. 자신의 이름을 감추려는 인기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여경의 거짓말은 어설프다. 그들은 분노할 줄 모른다. 자신이 애써 완성한 시나리오를 선배 감독에게 뺏기고, 바로 그 선배가 자신의 사랑도 모른 채 유명 여배우와 결혼을 해도 그들은 웃음 머금은 슬픈 눈빛으로 그 절망과 배신감을 감추려 한다.
인기와 여경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주인공들처럼 수줍어 하고, 현실과 꿈 사이에 갈등하는 영화감독이란 상황설정은 홍콩 이동승 감독의 <색정남녀>를 닮아있다. 영화 속에서 영화(시나리오)를 만들어가며 현실의 감정들을 그곳에 투영하는 방식은 <미술관옆 동물원>과 흡사하다. 그 모든 것들이 낯설지 않다. 영화속에서 피에로가 된 인기의 비애조차 배창호 감독의 초기작을 연상시킨다.
이런 유사성이 유치하지 않고 오히려 아름답고 정겨운 것은 착하고 순수하고 유머를 잃지 않은 감독의 마음 때문이다. 그 소년 같은 마음이 모두를 착하게 만든다. 인기의 꿈을 빼앗고, 여경의 사랑을 저버린 남자(선배 감독)조차 감싸주고, 인기와 여경을 사랑으로 이어준다. 인기로 하여금 오늘도 에로비디오 촬영을 하면서 언젠가는 자신이 바라는 영화를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가게 한다. 이런 사랑과 희망이야말로 <불후의 명작> 이라고 말한다.
<불후의 명작> 은 디지털시대를 무시한 아날로그 같은 영화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아날로그가 싫지 않다. 인간의 냄새가 더 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느 가수의 외침처럼 역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람인가 보다. 23일 개봉.
감독 : 심광진
출연 : 박중훈, 송윤아, 황인성, 박철민, 김여랑
분류 :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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