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벨기에 브뤼셀의 나토 본부에서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회견하는 모습. [로이터]
세계 최대 집단방위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창립 77년 만에 존립을 우려할 정도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후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파병 요구를 전면 거부한 유럽에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급기야 “탈퇴를 강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군용기에 대한 영공 폐쇄, 기지 사용 불허, 방공자산 중동 재배치 거부 등 유럽의 반기가 계속되면서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나토가 미국의 막대한 자금과 군사력에 의존해 운영됐던 만큼 미국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다만 유럽의 저항이 동맹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인상 압박, 상호관세 인상, 그린란드 야욕 등 그간 반감이 누적된 결과인 만큼 미국의 자업자득이란 평가도 나온다. 미국·이란 전쟁이 이달 내에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되면 나토 문제가 수면 위로 급부상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란 전쟁이 한 달째로 접어들면서 전쟁 개입을 거부하는 유럽의 움직임은 더욱 뚜렷해졌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1일 이탈리아가 미 군용기의 시칠리아 공군기지 사용을 불허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극우 성향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트럼프 행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온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이탈리아 군 당국은 미군이 요청한 비행 계획이 양국 협정에 명시된 정례적 운항이나 군수 지원 목적이 아니기에 해당 조치를 했다는 입장이다. 멜로니 총리는 양자 조약을 넘어선 미국의 이탈리아 군 기지 사용은 의회 승인 대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폴란드는 자국에 있는 패트리엇 방공시스템을 중동으로 차출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반기를 들었다.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폴란드 국방장관은 엑스(X)에 “패트리엇은 폴란드 영공과 나토 동부를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이전할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패트리엇 2개 포대를 운용 중인 폴란드는 1개 포대를 중동으로 보내면 향후 러시아의 공습을 방어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폴란드는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 회원국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 방위비 지출’ 목표를 제시할 당시 가장 먼저 동참 의사를 밝히며 호응한 바 있다.
프랑스는 자국 군사기지 보호 등을 위해 핵추진 항공모함인 샤를 드골함을 비롯, 총 12척의 군함을 중동에 투입했지만 이스라엘행 무기 수송기의 자국 영공 통과는 불허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프랑스는 군사 물자를 싣고 이스라엘로 향하는 항공기들의 영공 통과를 허용하지 않았다. 미국은 이를 기억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쟁 초기부터 미국의 이란 공습을 정면 비판해 온 스페인은 아예 영공을 닫아버렸다. 마르가리타 로블레스 스페인 국방장관은 전날 “이란 전쟁과 관련된 어떤 작전에도 스페인 영공을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유럽의 명확한 선 긋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발언 수위도 세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나토 탈퇴를 강력하게 검토중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는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란 전쟁 후 미국의 나토 회원국 유지를 재고할 것인지 질문에 “그렇다. 재고할 단계도 넘어섰다고 말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나는 나토에 영향받은 적이 없다”며 “항상 그들이 종이호랑이인 걸 알고 있었고, 푸틴(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그걸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종전 후 미국이 나토 회원국 유지를 재검토해야 할 거라고 말한 데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루비오 장관이 그렇게 말해) 기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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