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벌인 120년의 사투, 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는 승리했다. 그리고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세계의 맹주로 우뚝 섰지만, 그 찬란한 승리의 이면에는 공화국을 지탱하던 중산층 자영농의 몰락이라는 치명적인 대가가 숨어 있었다.
오늘날 인공지능(AI)과 피지컬 AI(로봇)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풍경은, 2천 년 전 노예 노동이 로마 시민의 일자리를 앗아갔던 ‘라티푼디움(Latifundium)’ 현상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아 있다.
제3차 포에니 전쟁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온 로마 시민군을 맞이한 것은 황폐해진 농토와 감당할 수 없는 빚이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동안 방치된 땅은 귀족들에게 헐값에 팔려나갔다.
귀족들은 전쟁에서 잡아 온 노예들을 투입해 거대 농장인 라티푼디움을 경영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지만, 생산 수단을 잃은 시민들은 도시 빈민, 즉 무산계급(프롤레타리아)으로 전락했다.
경제적 자립 기반을 잃은 이들은 유력 정치인들에게 투표권을 팔아 끼니를 잇는 기생적 존재가 되었고, 로마군의 핵심이었던 자영농의 붕괴는 군사력 약화와 극심한 빈부 격차로 이어졌다.
뒤늦게 그라쿠스 형제가 토지 점유를 제한하고 땅을 재분배하려 시도했으나, 기득권의 반발로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시스템의 붕괴를 방치한 로마 공화정은 종말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카이사르에 의하여 1인 독재라는 황제통치 즉 제정 로마로 넘어가게 되었다.
로마 시대의 노예가 저가 노동력을 제공했다면, 현대의 AI와 로봇은 휴식조차 필요 없는 ‘디지털 노예’다. 벌써 대규모 해고가 현실화되고 있으며, 고등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은 로마의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무산계급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개인의 무능이나 운 나쁜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기술이 인간의 노동 가치를 압도하며 발생하는 문명사적 구조 변화다. 우리가 로마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기술이 만드는 풍요의 결실을 소수 빅테크 기업과 대자본가만 독점하는 구조를 반드시 깨뜨려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발판 삼아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첫째, 부의 분배 방식을 재설계해야 한다. 공화정 로마가 국유지 재분배에 실패해 무너졌듯, AI가 창출하는 부가 특정 계층에 고착되지 않도록 로봇세나 AI 수익 과세 등을 통한 보편적 기본소득(UBI)과 사회 안전망 구축 논의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둘째, 노동의 정의를 확장해야 한다. 과거 로마 시민들이 노예노동 대체에 취약하여 새로운 노동 영역을 개척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도 기존의 생산 중심 노동관에 갇혀서는 안 된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창의적 활동, 돌봄, 공동체 서비스 등 인간적 가치에 경제적 보상을 부여하는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셋째, 데이터 주권과 지적 유산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인류 공동의 지적 자산을 학습해 성장한 AI는 그 혜택 또한 인류 전체에게 돌아가야 한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소유권이 소수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민주적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다.
특히 미국내 소수계로서 우리는 AI 혁명이라는 대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시대의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지 않는 자들에게 경고를 보낼 뿐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실업과 불안은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문명의 대전환기가 던지는 숙제다. 이를 정책적으로 고민하고 입법화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깨어 있는 유권자'가 되어야 한다.
로마 귀족들의 탐욕이 공화정의 몰락을 가져왔던 비극을 기억해야 한다. 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재앙이 아닌 진정한 풍요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당장 미래를 설계하는 정치적 주체로 일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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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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