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복, 이야기가 밥상이 될 때- 엘렌 이 푸드 스타일리스트 (3)

나를 위한 위로의 음식이 되어주는 전복
우스갯소리로 요즘 한국인은 두 부류의 사람으로 구별될 수 있다고 한다.
‘두쫀쿠’, 일명 ‘두바이 쫀득 쿠키(이하 두쫀쿠)’를 먹어본 사람과 먹어보지 못한 사람으로 나눠진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시작된 ‘두쫀쿠’의 인기는 해외에 나가있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유행까지 불러일으키며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만들어 줬으면 하는 전복죽
그 유행을 확인할 수 있는 한 예를 살펴보자. ‘두쫀쿠’에는 ‘카다이프 (Kadayıf)’, 튀르키예와 중동 지역의 풍부한 전통을 지닌 식재료, 가 사용되는데 이 재료를 구하기 위해 중동 식료품점에 찾아가면 가게 주인이 “Are you Korean? Come, here’s Kadayıf for your food!”라고 말하며 맞이한다고 한다. ‘두바이 초콜릿’에 기원을 둔 이 ‘두쫀쿠’가 중동 식료품점에서 ‘한국’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되었다는 것이 재미있고 놀랍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의미를 갖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들이 있다. 너무 가까이 있어 당연하다고 여겨지거나, 그것이 얼마나 유의미한지 굳이 숙고하지 않아 지나쳐버리는 것들이다. 살림이 그렇다. 매일 반복하여 차리고, 먹고, 치우는 일들은 늘 거기 있었기에 질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같은 풍경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때가 온다. 이미 곁에 있던 것들이 새롭게 읽히고,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마음이 비로소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그뿐인가? 캘리포니아의 전복도 마찬가지다. 캘리포니아에도 전복이 있어 왔다. 바다에 서식하고, 시장에 나오며, 고급 식재료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전복을 ‘먹는 법’으로, ‘대접의 음식’으로 기억하는 이곳의 현지인들은 많지 않다. 한국에서 전복은 몸을 회복시키는 음식이자 손님상에 오르는 특별한 재료다. 아플 때 끓여 먹는 전복죽, 귀한 이를 위해 올리는 전복찜은 음식 그 자체를 넘어 마음의 표현에 가깝다. 반면 이곳, 캘리포니아에서의 전복은 여전히 낯선 식재료에 머문다. 존재는 하지만, 그 의미까지 아직 공유되지는 않는 상태다.
1900년대 초 아시아계 이민자들을 통해 전복의 가치가 드러난 뒤, 전복은 보호종으로 지정되며 채취가 제한되었다. 무엇보다 전복을 어떻게 손질하고, 어떻게 조리해 먹는지에 대한 기억이 이어지지 않았다. 재료는 있었지만 밥상은 없었던 셈이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에서 전복은 여전히 ‘설명해야 하는 음식’에 가깝다. 어떻게 먹는지, 왜 먹는지, 어떤 자리에 올리는지까지 함께 설명해야 비로소 이해되는 재료다. 반면 한국에서 전복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음식이다. 전복이 상징하는 회복과 대접, 정성의 맥락이 자연스럽게 공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재료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의 문제에 가깝다.
푸드 스타일리스트이자 ‘노씨 보자기’ 대표 엘렌 이는 전복을 자신의 쏘울푸드로 꼽는다. 전복은 그녀에게 단순히 ‘비싼 재료’가 아니라, 자신이 자라온 기억과 지금의 삶을 이어주는 음식이다. 아이가 아플 때면 습관처럼 전복을 사러 갔고, 다급한 마음으로 전복죽을 끓였다. 몸을 낫게 하겠다는 믿음이라기보다,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돌이켜보면 그 믿음은 전복의 효능보다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돌봄을 다했다는 안도감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 믿음이 한 번 흔들린 적도 있었다. 전복죽으로 유명한 식당에서 우연히 부엌이 보이는 자리에 앉았던 날, 선반을 가득 채운 전복 통조림을 보았을 때다. 생전복으로 끓였을 것이라 믿었던 전복죽의 전복이 통조림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 충격 뒤에는 묘한 해방감도 따라왔다고 한다. 음식의 진정성이 재료 하나에만 있지는 않다는 것을, 자신이 만들어온 전복죽의 의미 역시 그 재료를 둘러싼 마음과 시간에 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엘렌 이 대표에게 전복은 여전히 특별하다. 그녀에게 전복은 한국의 기억이 담긴 ‘대접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이 오시는 자리에는 전복 요리가 빠질 수 없고, 전복을 먹어본 적 없는 외국인 친구들이 온다면 오히려 더 신이 나서 장바구니에 담게 되는 재료다. 모양부터 낯설어 “이게 뭐야?”라는 반응을 부르지만, 한 번 맛보면 누구나 고급 음식임을 알아챈다. 전복은 그렇게 설명이 필요한 음식이자, 설명이 끝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음식이다.
엘렌 이 대표가 전복을 다루는 방식은 언제나 상차림을 염두에 둔다. 뜨거운 솥 앞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전복죽이 버겁게 느껴질 때, 그녀는 가장 단순한 방법을 선택한다. 전복 버터구이다. 손질한 전복을 버터에 구워내면 쫄깃한 식감과 은근한 감칠맛이 살아난다. 여기에 통마늘과 감자, 버섯, 은행을 더하면 접시 하나로도 충분한 한식 밥상이 완성된다. 전복이 주인공이되, 다른 재료들이 조연으로 조화를 이루는 방식이다.
이 지점에서 한식 상차림의 또 다른 기본이 드러난다. 이전 편에서 소개한 반상기도 중요한 소재가 되지만, 상차림의 기본은 그 음식이 갖는 ‘이야기’에 있기도 하다. 무엇을 왜 이 자리에 올렸는지, 누구를 위해 차린 상인지가 분명할 때 음식은 제자리를 찾는다. 엘렌 이 대표에게 전복은 바로 그런 음식이다. 자신의 정체성과 기억, 돌봄의 시간을 담아 온 재료이기에 어떤 방식으로 조리하든 중심을 잃지 않는다.
<살림으로 뿌리내리다>의 첫 편에서 이야기했던 쏘울푸드는 결국 이 지점으로 되돌아온다. 특별한 조리법이나 화려한 상차림이 아니라, 반복해서 만들어온 음식, 망설임 없이 선택하게 되는 재료,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음식이 정체성을 드러낸다. 전복은 엘렌 이 대표에게 그런 존재다. 그리고 그 전복은 캘리포니아라는 낯선 땅에서도 여전히 한식 밥상의 언어로 말을 건다.

쉽게 만들면서도 전복의 풍미가 살아있는 전복 버터구이
한식 상차림의 기본은 사실 재료에 깃든 삶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엘렌 이 대표의 관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어떤 음식이 나를 살렸는지, 어떤 재료가 나의 시간을 증명하는지에 대한 서사가 있을 때, 상차림은 비로소 살림으로 뿌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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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이 푸드 스타일리스트의 전복 버터구이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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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전복 4개, 통마늘 20톨, 감자 2개, 은행 20알, 버섯 약간, 무염버터 2큰술, 올리브오일 약간, 소금·후추, 가니쉬용 파슬리 또는 깻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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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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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복은 내장과 입을 제거하여 손질하고, 앞뒤로 칼집을 낸 후,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2. 마늘은 껍질을 벗겨 썰지 않고 통마늘로 준비한다.
3. 감자도 껍질을 벗기고 전복과 비슷한 크기로 잘라 준비한다.
4. 작은 팬에 물을 붓고 끓인 후, 준비한 감자를 넣고 1분 삶은 후, 통마늘도 함께 넣고 1분 데쳐낸다. 건져내어 물기를 제거한다.
5. 은행은 마른 팬에서 노릇하게 바싹 볶아 소금 후추 간을 한다. 은행이 볶음에 섞이면 볶음 전체에 쓴맛을 내기 때문에 따로 준비한다. 볶은 후에 올려도 되고, 사진에서 처럼 꼬치에 끼워 곁들여도 좋다.
6. 중간 크기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른 후 중간불로 가열한다. 여기에 데쳐두었던 감자와 마늘을 넣고, 소금 간을 한 후 감자와 마늘의 겉면이 노릇하게 익을 때까지 볶는다.
7. 5의 팬에 버터 1큰술을 넣고 버터가 녹으면 준비한 전복과 버섯을 넣고 전복에도 소금 간을 한다. 중간불에서 재빨리 익힌다. 버터가 모자라면 조금 더 넣어도 좋다.
8. 전복이 익으면 접시에 담고, 남은 소스도 끼얹는다. 가니시로 파슬리를 뿌리고, 은행을 곁들여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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