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히말라야가 위치한 네팔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뉴스를 접하면서 24년전 64세의 나이로 처음 히말라야를 올랐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지금 나는 여든여덟이다. 그 산은 내 인생에서 “한 번 잘 다녀온 여행지”가 아니라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묻고 또 묻게 만든 거대한 거울이었다.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하던 날, 미리 연락해 둔 포터와 가이드, 대사관 직원이 나이 든 여행자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소가 거리를 가로막으면 차들이 묵묵히 기다리는 풍경, “소는 우리에게 어머니 같은 존재”라고 말하던 가이드. 우리 사회의 효율과 속도 대신, 이곳에는 잠시 멈춤과 기도가 있었다.
호수 위 작은 섬 호텔에서는 물안개 너머로 히말라야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포카라에서 냐풀(Nyapul)까지 동행한 것은 짐을 잔뜩 짊어진 작은 당나귀 여섯 마리였다. 두 시간 넘는 산길을 해진 신발 하나 신고 학교 가는 아이들의 뒷모습, 죽은 이를 품에 안고 산을 내려오는 한 남자의 모습이 오래 남았다. 그는 가족을 마지막까지 지키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몸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산을 오르고, 그는 죽음을 안고 산을 내려왔다. 그 좁은 길 위에서 삶과 죽음, 떠나는 자와 남는 자가 스쳐 지나갔다.
산을 오르는 동안, 작은 마을과 민박집의 사람들은 나이 든 여행자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차가운 물과 허름한 침구 속에서 느낀 편안함은 젊었을 때 당연하게 여겼던 것과 달리 감사로 다가왔다. 자연과 사람의 온기가 교차하는 순간, 나는 삶의 소중함과 인간의 연대감을 더욱 실감했다.
우박과 눈이 쏟아지는 밤, 번들거리는 슬리핑백 속에서 떨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나, 남은 시간은 어떻게 내려가야 하나.” 잠시 후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눈 덮인 능선을 비출 때, 자연은 마치 “너보다 훨씬 큰 세계가 여기 있으니, 네 고민을 너무 움켜쥐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산길의 온화한 공기 속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우리를 앞장서 인도했다. 끝까지 나를 지켜주는 길동무처럼, 산과 마을, 사람과 동물이 나를 돌보는 느낌이었다. ‘안나푸르나 쉼터’에서 마신 따뜻한 차 한 잔은, 히말라야에서 남겨진 피로와 긴장을 천천히 녹여 주었다.
도착지에서 포터와 가이드가 하얀 카타를 목에 걸어 주며 마지막 환대를 베풀었다. 그들의 미소와 손길 속에서 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살아 있음의 의미를 다시금 느꼈다. 마지막으로 본 갠지스강 지류의 노천 화장터, 오렌지색 천에 싸인 시신과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삶과 죽음, 구속과 자유가 한자리에 겹쳐 있었다.
세월이 흘러 여든여덟이 된 지금,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길이 끝난 것은 아니다. 다만 걸음이 느려졌을 뿐, 천천히라도 가 보고 싶은 길이 아직 남아 있을 뿐이다. 꼭 히말라야가 아니어도 좋다. 자신을 조금 더 “살아 있게” 만드는 길이 있다면, 두려움보다 용기를 조금 더 보태어 한 걸음 내딛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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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발렌티나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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