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바퀴는 언제나 피로 굴러왔다. 미국 혁명전쟁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이 전쟁이 남긴 파장은 인류사의 흐름을 바꾼 모든 사건 가운데 가장 큰 혜택을 인류에 안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의 불씨는 식민지 지식인들이 남긴 우아한 문장과 명료한 사상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1777년 이후 실제로 총알과 추위를 견뎌내며 피 흘린 이들은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땅 한 평 없는 소작농, 유산을 기대할 수 없는 집안의 둘째·셋째 아들, 빚에 쫓긴 사람들, 영국군 탈영병, 계약노동자와 견습생, 사면을 바랐던 범죄자들’이라는, 말 그대로 식민지 사회의 최하층민이었다.
PBS가 6부작(각 2시간)으로 방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미국 혁명(The American Revolution)’은 이 건국 신화를 새로운 관점에서 풀어낸다. 혼란스럽고 때로는 불편하지만, 끝내는 깊은 울림을 주는 건국 서사다. 역사에서 ‘우연성’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근대 이전의 세계’가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국군보다 더 많은 미군을 죽인 것은 천연두였고, 7년 동안 10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혁명전쟁은 처음부터 끝까지 ‘내전’의 성격을 지녔다. 인구의 3분의 1은 충성파(이 가운데 약 5만 명이 영국군으로 참전), 3분의 1은 애국자, 나머지 3분의 1은 ‘전쟁이 다른 곳에서 벌어지길 바란’ 사람들이었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아들조차 충성파였다. 어떤 전투에서는 사실상 모든 참전자가 미국인이었다.
그럼에도 혁명은 인쇄물과 아이디어의 힘으로 확산됐다. 24개의 식민지 주간지와 토머스 페인의 ‘상식’(Common Sense)은 문해율이 높았던 식민지 사회를 흔들어 깨웠다. 군사 경험에서 16년 멀어져 있다가 다시 군에 소집된 조지 워싱턴은 병참·포병·요새 전략 서적을 들고 다니며 공부했다.
애국자들은 타이콘데로가 요새에서 버크셔 산맥을 넘어 보스턴까지 300마일을 이동하며 64톤의 대포를 끌어왔다. 제국과 싸웠던 그들의 머릿속에도 제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하이오 밸리, 그리고 그 너머까지. 대륙회의가 그 군대를 ‘대륙군’이라 부른 것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었다.
전쟁에서 가장 비극적인 피해를 본 이들은 15만 명의 원주민이었다. 어느 쪽이 승리하든 그들의 땅과 삶은 사라질 운명이었다. 눈물의 서진은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시작됐다. 의회의 압박 속에 워싱턴은 1779년 “원주민 거주지의 전면 파괴”를 명령하면서 “지금 자라고 있는 그들의 작물을 완전히 망쳐 다시 심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대륙군에는 흑인 병사 5,000명, 그리고 많은 원주민도 함께 싸웠다. 이 부대들은 1940년대 후반까지의 미군보다 더 통합된 조직이었다.
전쟁이 남긴 역설도 있다. 미국이 영국 제국에서 ‘이탈할 자유’를 확정적으로 얻은 마지막 전장은 사우스캐롤라이나였다. 이 지역에서 벌어진 약 100개 전투는 전체 전쟁 사망자의 5분의 1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승리를 이끈 민병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원래 노예 반란을 막기 위해 조직된 무장이었다. 그리고 80년 뒤,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다시 분리 독립을 외쳤다.
대륙의 운명은 작은 전투들의 결과로 갈렸다. 가장 큰 전투 요크타운조차 병력 3만 명 규모였고, 미국군 전사자는 389명에 불과했다. 벙커힐 115명, 먼머스 362명. 이를 1916년 솜 전투 첫날 영국군 전사자 2만 명과 비교하면, 혁명전쟁은 전투 규모보다 사상적 영향이 훨씬 더 컸음을 알 수 있다.
혁명은 이후 20세기까지 이어지는 물질적·도덕적 에너지를 방출했다. 애국자들을 도운 한 유럽 장군은 미국사회의 성공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유럽에서는 ‘이 일을 하라’고 말하면 병사가 그대로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왜 해야 하는지’ 먼저 설명해야 한다. 그러면 비로소 한다.” 뿌리 깊은 개인주의가 만든 장면이다.
전쟁터는 언제나 잔혹했다. 마취 없이 다리를 절단하던 중, 다른 쪽 다리까지 대포알에 날아가는 병사도 있었다. 켄 번스는 서문에서 현대 미국인이 혁명의 ‘불편한 진실’로부터 너무 멀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신화와 향수에서 벗어나 복잡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복잡함 속에서도 위안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미국 250주년을 여는 비공식 신호탄과 같다. 물론 요즘같이 예민한 분위기 속에서 축제 분위기가 오래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여섯 밤 동안만큼은,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이 꽤나 벅차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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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F·윌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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