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인도(美人圖)
▶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1813?) 간송미술관
살포시 묶은 가슴 활짝 핀 봄꽃 가려봐도
붓끝이 닿으면 그 신비 드러난다네
주홍색 허리끈 살그머니 풀어 놓고
노리개 매만지며 누구를 바라보나
다빈치의 모나리자 내 눈빛만 하오리까
봄바람에 귀밑머리 한올 두올 흩날리고
열두 폭 옥색 치마 부풀어 올랐다네
하이얀 버선발도 바깥세상 보고픈가
내 마음 님을 따라 날아가고 싶나이다
혜원은 신숙주의 방계 후손으로,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고 첨절제사(僉節制使)의 관직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도화서에서 파직되었는데 그 원인으로 그의 풍속화 내용이 지나치게 선정적이었다는 설(說)이 전해져 내려오지만 확실한 사료(史料)는 존재하지 않는다. 혜원은 뛰어난 색감과 세련된 필치의 화풍으로 단원 김홍도와 함께 조선 후기 풍속화의 큰 별이었다.
<미인도>는 여인의 전신상을 정면에서 살짝 비껴선 각도(소위 ‘얼짱 각도’)에서 비단에 그린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서 보물 197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한 번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의 화제(畵題)는 <盤胸中萬花春(반흉중만화춘) 筆端能與物傳神(필단능여물전신)>으로, ‘가슴속 깊은 곳에 춘정이 서려 있는데 붓끝으로 능히 그 신비를 전할 수 있네’라는 뜻이다.
기방(妓房)의 여인으로 보이는 주인공은 다소곳한 표정으로 가지런히 빚은 머리에 가체(다리머리)를 얹고 오른쪽 머리에 갈색의 화려한 리본을 달았다. 오똑한 코와 앵두같이 작은 입술은 웃음을 머금은 듯, 무언가 말을 건네려는 듯하다. 선해 보이는 눈은 수줍게 약간 아래를 향하고 있고, 귀는 작고 예쁘게 생겼으며, 귀밑머리 몇 올이 귀엽다. ‘숨은 듯, 드러난 듯, 잘 보이지 않고 얼핏얼핏 드러난다’는 뜻의 <약은약현(若隱若現)>이라 할까? 길고 흰 목 아래 검은색 동정을 단 윗 저고리는 짧아서 아슬아슬하고, 옷고름은 여미려는지 풀려는지 알 수 없다. 우윳빛 저고리의 옥색(玉色) 소매 끝으로 드러난 작은 손으로는 고급스러운 삼작(三作)노리개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며, 그윽한 빛의 옥색 치마는 마치 조선백자 항아리처럼 둥글고 풍성한 곡선을 이룬다. 그리고 부드러운 묵선으로 그린 치마 밑으로 흰색 버선발이 왼쪽을 향해 살짝 드러나 파격(破格)의 은근한 매력을 보인다.
혜원은 이 그림에서 반가(班家) 여인의 정숙함과 기방 여인의 요염한 아름다움을 결합하여 그가 생각한 가장 아름다운 조선의 여인을 그려냈다. 특히 여인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내면에 깃든 아름다움도 자연스럽고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 미인도에서 느껴지는 격조 높은 우아한 아름다움은 한복 패션, K-드라마 등 현대 K-문화의 원형으로 이어진 조선의 미의식(美意識)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아가 서양의 모나리자 그림과 비교할 때, 혜원의 이 미인도는 그윽한 눈빛, 절제된 에로티시즘과 단아한 품격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는 점에서 정말 뛰어난 작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그림은 점잖은 선비의 사랑방에 걸 그림은 아니다. 어쩌면 한양 장안에서 최고의 기방을 운영하는 여주인이 혜원에게 거금을 주고 이 그림을 사서 가장 비싸고 화려한 VIP방에 걸어 놓았을 것이다. 이 그림을 본 손님들이 입소문을 내어 이를 보기 위해 장안의 부자 한량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결국 그림값의 100배이상 매상을 올려 기방 여주인의 탁월한 경영 수완이 빛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joseonky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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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용 교수 (메릴랜드대 화학생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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