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악관 찾은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에 “백인 박해” 영상·문서 제시 공개 면박
▶ TV 쇼처럼 연출… 인종분리 상처 들춰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대통령이 21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상회담 상대방인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을 옆에 앉혀 놓고 남아공 백인 대상 인종 박해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라며 기사 출력물들을 취재진 앞에서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부른 외국 정상에게 또 공개 면박을 줬다. 이번 피해자는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다. ‘백인이 역차별당하고 있는데 정부는 뭘 하고 있느냐’며 영상 자료까지 불쑥 들이밀었다. 미국에 방송되는 TV 앞에서 오랜 소수 백인 지배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가 남긴 남아공의 상처를 후볐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라마포사 대통령을 옆에 앉혀 두고 남아공 백인 집단 학살의 증거라며 동영상을 틀었다. 정상회담은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TV로 중계되고 있었다. TV 토크쇼 같은 구도였다. 예고도 없었다. 리얼리티쇼 진행자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느닷없이 조명을 어둡게 만들라고 참모에게 지시한 뒤 영상을 재생하라 시켰다.
영상에는 남아공의 급진 좌파 정당 경제자유전사(EFF)의 대표 줄리어스 말레마가 주도하는 대규모 집회 장면이 담겼다. 수만 명이 모인 경기장에서 춤을 추며 말레마는 ‘보어인(네덜란드 이주민)을 죽이자’는 구호를 외친다. 이 영상을 보며 라마포사 대통령은 “소수 정당 대표 주장일 뿐 정부 정책과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특정 집단을 저렇게 죽이자고 선동하면 보통 빨리 체포되기 마련’이라는 트럼프 대통령 지적에는 “남아공 헌법은 다당제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답했다.
영상에는 또 흰색 십자가와 흙더미 여러 개가 모인 곳으로 이동하는 차량 행렬도 등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요일 아침마다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을 찾기 위해 1,000명 넘는 백인 농부가 매장된 곳 앞에 차들이 줄지어 선 광경이라고 묘사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처음 보는 장면”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디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영상의 흙무덤들은 2017년 백인 농부 학살을 주장하는 시위를 위해 만들어진 가짜라고 확인했다.
영상만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희생자 관련 기사 출력물 뭉치를 라마포사 대통령에게 건네기도 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연출한 것 중 가장 놀랍다. 파국으로 끝났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2월 백악관 협상 당시에도 (영상이나 기사 같은) 참고 자료가 제공되지는 않았다”고 논평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남아공 대통령을 상대로 기습적인 매복 공격을 가하고 그게 TV로 생방송됐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라마포사 대통령의 해명을 대부분 마이동풍으로 흘려듣고 딴청을 피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취임 뒤 줄곧 남아공 백인 농부가 박해당하고 있다며 남아공 정부에 적개심을 보여 왔다. 그는 남아공 원조를 중단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고, 3월에는 주미 남아공 대사를 내쫓았다. 90일간 유예되기는 했지만 지난달 초엔 남아공을 상대로 30% 고율 상호관세 부과를 결정했다. 최근엔 남아공 백인 49명을 난민으로 받아들였는데, 난민 수용을 중단한 트럼프 행정부의 유일한 예외였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자국에 풍부한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을 지렛대로 대미 관계 재설정을 시도했지만 허사로 돌아갔다. 그는 방미 일정을 마무리하며 연 기자회견에서 “남아공에 집단 학살은 없다”고 거듭 강조한 뒤 남아공에는 미국이 필요로 하는 9가지 핵심 광물이 매장돼 있다“며 “우리는 (미국과) 협력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백인들의 인종주의 정책을 없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후계자인데도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도발을 감내했다. 골프를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날 남아공 출신 골프 스타인 어니 엘스를 회담장에 데려갔다. 회담장에는 트럼프 대통령 최측근으로 남아공에서 태어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자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에서도 인권 역주행을 불사하고 있다. 2020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인권 운동을 촉발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5주기(25일)를 나흘 앞둔 21일 트럼프 행정부 법무부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등 일부 지역 경찰과 합의한 무력 사용 정책 등의 개혁 방안을 더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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