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일과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LA 한인타운 시니어&커뮤니티센터(이하 시니어센터)에 연극반이 생겼는데 한 번 해보자고 아내가 제안했다. 생뚱맞은 제안에 얼떨떨한 채 등록하는 것으로 시니어센터와의 인연이 시작이었다. 센터의 클래스 강사와 행정 및 시설관리 업무는 거의 모두 재능기부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진행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
수업은 대체로 3가지로 분류된다. 첫째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기초반과 영어, 법률상담 등의 생활밀착형 수업, 두 번째는 건강에 필수인 운동을 위한 스트레칭, 태극권, 각종 댄스반, 그리고 세 번째는 미술, 공예, 서예, 음악, 악기연주, 연극 등 취미생활을 위한 클래스들이다. 시니어센터 이사들과 타운 내 뜻있는 기관 및 단체의 후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정부 지원이 없다는 게 안따까울 뿐이다.
지난 어머니날에도 예년처럼 센터에서 학생들의 공연이 있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연극반 역시 ‘거울’이라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최초로 이 땅에 거울이 소개될 무렵, 거울을 처음 보는 사람들의 반응을 묘사한 시중의 짧은 농담을 우리반 담당 교수이자 극단LA 대표인 김유연 감독이 이번에도 그의 천재적인 창작력을 발휘하여 뛰어난 대본을 만들어 낸 것이다. 300명 관중의 시선을 받는 일은 짜릿할 만큼 자극적이고 성취감 또한 남달라서 중독성이 강하다. 그야말로 색다른 인생 경험이다.
출근하듯 매일 찾는 탁구장과 주말마다 나가는 사진 출사가 아니라면 시니어센터엔 참석하고 싶은 클래스가 너무도 많다. 눈여겨 보면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출석하는 학생들도 많다. 하마터면 무료하기만 한 노년을 보냈을 수많은 한인 연장자들이 센터 덕에 활기찬 노년을 재미있고 즐겁게 누리고 있다. 나 역시 탁구가 힘들어 버거워지는 때가 되면 센터의 댄스반으로 운동을 대신할 계획이다. 여성의 수명이 더 긴 탓인지 센터에는 여성 회원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남성은 그 희소성으로 인해 존재 만으로도 본질보다 더 큰 대우를 받는 느낌이다.
시니어센터에 갈 때면 깨끗한 옷차림으로 가려고 노력한다. 다른 반에 출석하는 남성 중에는 집에서 낮잠 자다 온 것 같은 차림이 종종 보이는데 그럴 때면 보는 내가 민망하다.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는데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라는 생각이다. 또한 센터에 들어설 때면 1층 로비에서 봉사하는 자원 봉사자들에게 ‘안녕하세요’하고 큰 소리로 인사한다. 바라는 것 없이 봉사하는 그들이 진정으로 고맙기에 하는 감사의 표현이다.
올해 어머니날 행사에서는 특기할만 한 일이 한 가지 있었다. 로스앤젤레스가 홈인 LA 킹스 아이스하키팀이 센터에 프로그램 발전기금 1만5,200달러를 쾌척한 것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LA에서 하키 시합이 있던 지난 3월23일, 우연한 인연으로 센터의 하모니카 앙상블이 시합장에서 미국 국가를 연주하게 되었는데 그날 LA 킹스 팀이 벅찬 상대를 이겼다. 그 후 LA 킹스 팀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4월21일에 열린 플레이오프 1 차전에 하모니카 앙상블을 다시 불렀더니 또 승리를 거두자 이제는 확신을 하게 된 것이다. 하모니카 앙상블도 신이 났지만 센터의 다른 반들도 잘만하면 외부공연에 초대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LA 킹스 팀은 돈만 기부한 게 아니라 한인 시니어들에게 꿈도 심어준 셈이다.
사람이 목숨이 붙어 있다고 모두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삶이어야 마땅하다. 사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아내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연극이지만 긴장과 희열이 팽팽한 무대에 서는 일은 아직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래서 나는 요즘 시니어센터에 가는 일이 신난다. 나는 음식을 가리는 손주들에게 우선 맛부터 보라고 다독인다. 그렇지 않으면 맛있는 음식을 평생 놓치게 될 수도 있다고 설득한다. 자, 이제 당신 앞에 진수성찬의 잔칫상이 놓여있다. 맛을 보고 고르는 것은 당신의 몫이다. 누리는 삶을 위해서는 지금 행동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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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봉기 LA 시니어센터 연극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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