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간 강한 바람과 함께 소낙비가 쏟아지더니 작열하던 더위도 차츰 수그러지고 요즈음은 아침저녁으론 서늘한 날씨여서 초추의 기운이 완연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고 보니 농작물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도 이번 7일이며 추석도 올해엔 빨리 다가와 17일이고 공식적으로 가을이 시작되는 추분도 22일이다.
그래서인지 집 주위를 산책할 땐 벌써부터 다람쥐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며 아직은 파란 도토리들을 줍느라 한창이고 길옆의 가로수에선 매미들의 합창이 끊이질 않는다. 매미들의 합창을 들을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사람, 우리들의 본향으로 14년 전에 훌쩍 떠난 그리운 그 사람, 왜 그렇게 빨리 갔는지? 그는 아픈 몸으로 안 아픈 체 태연하게 천천히 걸으며 나한테 매미들에 대한 자기의 어렸을 적 추억들이 가득 담긴 경상도 시골 보따리의 끈을 풀기 시작했다.
한여름 원두막에 앉아 수박이나 참외를 먹으며 듣게 되는 “맴맴맴” 울어대는 참매미, 보리 수확할 때 울어대는 보리매미는 “찌르르르” 하면서 첫 음을 내며 여러 마리가 울 때면 “매앵, 매앵” 하면서 산 전체에 울려 퍼지기도 한다고… 늦여름에 굵게 느리게 우는 말매미는 “찌르르르매에맴…”하고 운다고 장황하게 직접 시범을 보이며 설명하곤 했다.
난 이 매미 이야기를 매년 여름마다 둘이 걸을 때 들어야만 하는 고충(?)을 감내해야만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왜 2010년 여름엔 한 100보 걷다 쉬면서 똑같은 매미 스토리에 좀 더 살을 붙여서 이야기했는지 짐작이 간다. 점점 쇠약해 가는 다리의 근육에 기운이 없어져 계속해서 걷자니 힘이 들어 “좀 쉬어가자.” 라는 말은 안 하고 매미 이야기를 빙자로 쉬었던 게 아닌가 한다. 40년 동고동락한 아내에게마저 자기의 약함을 보여주기 싫은 한 남편의 자존심이었을까?
이처럼 바보스럽게 자존심이 강했던 내 남편, 같이 유학 와서 여름방학엔 쇼트 오더 쿡으로 웨이트리스로 갖은 고생 다 하며 유학 생활 마치고 교수로 공립학교 선생으로 지나며 같이 웃고 울고 한 40년 생활! 가르치는 걸 천직으로 삼으며 고고하게 학자의 길을 걷던 남편을 하나님께선 왜 그리 빨리 데려가셨는지?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며 완행열차 달리듯 느릿느릿 울어대는 매미들의 코러스를 들을 때마다 무뚝뚝했지만 속정이 깊었든 경상도 사나이, 옛날의 연인 그리고 영원한 내 남편 고 김필규 박사가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마지막으로 나한테 한 말 “My wife,”는 엄마에 대한 아빠의 순수한 사랑과 고마움이 함축되었다는 우리 딸의 해석에 동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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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에스터 라우든 카운티 공립학교 전직 교사 애쉬번,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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