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아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가 체코슬로바키아 수데테란트 지역을 독일에 넘겨주는 내용의 ‘뮌헨 협정’에 서명했을 때만 해도 전쟁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나치 독일은 이내 체코를 병합하더니 9월에는 폴란드를 침공했다. 거짓 평화에 속은 체임벌린이 물러난 뒤 총리로 등극한 윈스턴 처칠은 국난 극복을 위해 제1야당인 노동당과 손을 잡고 노동당 당수 클레멘트 애틀리에게 부총리를 맡겼다. 영국을 승전으로 이끈 처칠의 거국 내각은 ‘협치’의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최근 역사 속 영국의 영웅이 미국 하원에 소환됐다. 우크라이나 지원을 둘러싼 공방에서 집권 민주당은 “지금은 처칠이냐, 체임벌린이냐 기로에 선 순간”이라며 총 953억 달러의 안보 예산안 통과를 촉구했다. 법안은 다수당인 공화당 강경파 ‘마가(MAGA·미국을 더 위대하게)’의 반대로 6개월간 표류해온 터였다. 마침내 20일 608억 달러의 우크라이나 지원안을 포함한 패키지 안보법안이 가결된 데는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의 리더십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난해 10월 초유의 탄핵 사태로 공석이 된 하원의장 자리를 ‘운 좋게’ 꿰찬 존슨은 친 트럼프 성향의 강경 보수파다. 2022년 당시에는 400억 달러의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하원의장이 된 그는 2년 전과는 다른 결정을 내렸다. 민주당, 공화당 온건파와 손잡고 법안 통과를 주도한 것이다. 존슨은 “이기적 결정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보 위기 앞에 협치를 택한 그를 두고 CNN방송은 “어쩌다 하원의장이 된 존슨이 예상치 못한 처칠이 됐다”고 평했다.
불안한 국제 정세와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협치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2년 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며 여야 협력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익과 안보를 위해 여야가 초당파적으로 손잡는 모습을 보고 싶다.
<신경림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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