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25일 당시 23세(현재 96세)의 랠프 퍼킷 미군 중위가 전략 요충지인 평안북도 운산 205고지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미 육군 특수부대 제8레인저 중대 57명을 이끌고 남하하는 중공군 6개 대대와 사투를 벌였다. 적으로부터 수차례의 야간공격을 받았지만 육박전까지 펼치며 막아냈다. 적군의 기관총 공격 위치를 찾으려고 직접 탱크 위로 자신을 노출시키기도 했다. 레인저 중대는 세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205고지 점령에 성공했다. 수류탄 파편을 맞아 부상을 당한 그는 상황이 위태로워지자 부하들에게 자신을 두고 대피하라고 지시했지만 부하들이 이를 거부하고 그를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파죽지세로 북진했지만 불과 한 달 여 만에 중공군이 개입해 후퇴하게 됐다. 이에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적의 게릴라 공격에 대비하려고 유럽에 배치된 레인저 부대를 급히 재조직해 한국전에 배치했다. ‘(있어야 할 곳에 언제나) 거기 있으라(Be there)’는 퍼킷의 좌우명은 지도자의 덕목으로 널리 소개됐다. 퍼킷은 미군 최고의 영예인 ‘명예훈장’을 받고 미 국방부 ‘영웅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미국 국빈 방문을 위해 24일 출국한 윤석열 대통령이 현지에서 퍼킷 예비역 대령을 포함해 미군 참전 용사 3명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직접 수여할 예정이다. 엘머 로이스 윌리엄스 예비역 해군 대령은 적군 미그15기 7대와 교전한 끝에 4대를 격추시켜 유례를 찾기 힘든 전공을 세웠다. 고 발도메로 로페즈 중위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몸으로 수류탄을 덮어 부하들을 구했다. 가족이 고인을 대신해 훈장을 받는다.
퍼킷은 최근 우리나라의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6·25전쟁 10대 영웅’ 명단에도 포함됐다. 6·25 전쟁 당시 미군 178만 명이 참전해 3만6,000여 명이나 전사했다. 피로 맺어진 혈맹인 한국과 미국이 양국 관계를 안보·경제·기술 동맹으로 격상시키고 두 나라의 참전 용사들에 대한 보훈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주권과 영토를 지키는 길이다.
<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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