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숙명이 있다면 평생 한번이라도 ‘특종’을 해보는 것과 절대 ‘낙종’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은 단독보도로 명명됐지만 기자들에겐 특종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하다. 특종은 다른 언론사가 알아내지 못한 것을 먼저 보도하는 것인데, 사실 먼저 보도한다고 해서 모두 특종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른 언론사가 뒤따라 보도해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아무리 먼저 보도했다고 하더라도 별 일 아닌 것을 보도했다면 그것은 특종이 아니다. 다른 언론사가 늦게라도 보도할 만큼 중요도가 있어야 한다.
그만큼 중요한 내용을 먼저 알아내서 보도하기란 쉽지 않다. 평생 한 번만 특종을 해도 성공한 기자생활을 했다고 할 만큼 어렵다. 그래서 신문과 방송 등 언론사에서는 이달의 특종상, 올해의 기자상 등을 제정해 해당 기자의 실력을 인정해준다.
한번만 특종을 해도 기자로서의 실력을 인정받는 반면 한번 낙종으로 공들여 쌓아놓은 기자생활을 망치기도 한다. 처음 기자생활을 시작할 때 한 선배로부터 들은 한국에서 있었던 일화다. 그당시 한국 신문사들은 야간 데스크라는 직책을 뒀다.
야간 데스크는 새벽까지 근무하면서 시시각각 세계에서 들어온 뉴스를 체크하고, 큰 사건이 터지면 판갈이를 하는 등 한 밤 중 편집국장의 역할을 대행한다. 공무국 직원들은 판갈이 한 새 판을 인쇄해 배달한다.
그때 미국에서 큰 사건이 터졌는데 야간 데스크가 근무 중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아침에 눈을 떠 보니 경쟁신문들은 모두 이 내용을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는데, 이 신문사만 기사를 놓친 것이다.
평소 유능하고 실력있다고 인정받았던 그 데스크는 낙종을 했다는 수치심에 사표를 던졌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특종과 낙종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기자라는 직업은 사망률이 높은 직업군중 상위 직업에 속한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높다. 낙종한 기자에게 쏟아지는 회사 내 따가운 질책을 피하기 위해 온갖 변명을 대면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다.
지미 고메스 연방하원의원(캘리포니아 34지구)은 지난해 12월23일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린 보도자료(Press Release)를 통해 한미박물관 예산 700만달러를 포함해 15개 기관을 위한 연방예산 2,546만3,951달러의 지역사회 개발기금을 승인받는 쾌거를 이뤘다고 발표했다.
본보의 담당 기자는 늘 하던 취재방식대로 고메스 의원 웹사이트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됐다. 이메일 보충취재를 통해 고메스 의원의 코멘트를 따고 12월31일 바이든 대통령이 최종 예산안에 서명했다는 사실까지 확인해 보도자료가 나온지 3주가 지난 13일에서야 기사화할 수 있었다.
본보는 기사를 작성하면서 ‘휴∼’하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만약 다른 언론에서 먼저 보도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에 안도의 한 숨이었다. 고메스 연방하원의원 사이트에 들어가면 지금도 12월23일에 발표된 보도자료가 게재돼 있다. 17일 한 언론사가 뒤늦게나마 한미박물관 연방기금 확보 관련 기사를 후속 보도함으로써 13일자 본보 기사의 특종을 인정한 듯 하다.
요즘 인터넷 시대에는 특종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기업이나 기관, 단체가 중요한 내용을 거의 보도자료를 통해 알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들은 한 순간도 이메일과 SNS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특종은 없지만 이메일과 SNS를 놓친 낙종만 있을 뿐이다.
‘졸병기자’ 때 사건이 나면 피해자의 사진을 구하기 위해 집 밖에서 밤을 새고, 중요한 사안에 대해 필요한 관계자 코멘트를 따내려고 10시간씩 ‘뻗치기’하다 마주친 경쟁지 기자와 멋쩍게 웃으며 담배 한 대 나눠 피던 그런 취재 시절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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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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