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중이라 안전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도, 필수적인 그로서리 외에 어쩌다 한 번씩은 나 자신을 위한 럭셔리 나들이를 할 때가 있다. 마음을 졸이며 마스크랑, 손세정제랑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가지만, 돌아올 때는 괜한 짓을 했나 하는 후회는 늘 동반된다. 주로 야외의 넓은 공간에서 만난다는 유혹에 마음이 흔들린 탓에 저지르는 일이다.
어제는 친구들 6명이 UCLA 캠퍼스에 있는 머피 조각공원에 갔었다. 어떤 친구는 오랜만의 외출 생각에 전날 밤 잠을 설쳤다고도 했다. 모두들 오랜 팬데믹 생활에 익숙해진 간편한 차림으로 마스크와 소독약 등을 챙기고, 6피트 거리도 꼭 지켜야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반가운 해후를 했다.
머피 조각공원은 의사이면서 캔자스 대학과 UCLA 총장을 지냈던 프랭클린 머피 박사가 1967년 UCLA 캠퍼스 안에 조성한 넓은 대지 위의 공원이다. 지금이라면 공원의 면적으로 보나 땅의 가격으로 보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머피 박사는 독일 유학시절, 나치가 현대미술을 퇴폐적이라 공격하고 파괴하는 것을 목격하고, 미술품 보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마티스의 부조 작품으로 다소 관음적 느낌도 주는 여인의 누드 뒷모습, 역시 환상적인 미로의 미어 우부(새 모양), 거대하고 강한 철근이지만 낡은 철근 색깔 때문인지 부드럽게 기대고 싶은 세라의 T.E.U.C.L.A., 로댕의 다이내믹한 힘을 발산하는 워킹 맨, 라쉐이즈의 서있는 여인 나상, 헵워즈의 매끄러운 표면의 어떤 유기물 형태 가운데 뻥 뚫린 구멍으로 자연을 받아들이는 엘레지 3, 외에도 많은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이 싱싱한 초록색 풀밭 위에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다.
이번 나들이에서 나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것은 조각정원 입구에 서있는 ‘마스크들의 탑’이라는 거대한 조각이다. 그 조각가는 안나 말러, 즉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딸이라는 몰랐던 사실이 전율까지 느끼게 했다. 15피트의 높이에 하얀 샌드스톤의 작품은 각양각색의 눈동자 없는 얼굴들이 무표정한 것 같으면서도 많은 표정을 담고 있는 걸작품이다.
밑그림 없이 그냥 망치로 돌을 조각하기 시작했다는 그는 매우 자유롭고 용감한 삶을 산 여성이며, 다섯 번 결혼했고, UCLA에서 가르치며 LA 근교 베벌리 글렌에서 84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능, 자유로운 영혼이 이러한 창작력의 근원인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그 위에 피나는 노력이 뒤따랐겠지.
피크닉 점심과 정다운 대화로 즐거운 하루를 보냈지만 젊음이 넘치는 학생들이 없는 텅 빈 캠퍼스, 문이 굳게 잠긴 대학 건물들은 우리를 숙연하게도 했다. 대학 캠퍼스를 방문할 때는 늘 활기 넘치는 젊은이들에게서 신선한 기운을 받고, 또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 맘껏 배우고 펼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었는데 이번 방문에는 확실히 마음이 많이 위축되었나보다. 무엇보다 팬데믹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하루 빨리 예전의 정상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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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자 패사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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