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학자 출신 합리적 진보 정치인…7연승 이끌어 ‘선거의 여왕’
▶ ‘탈중국’ 지향하지만 중국에 도발 않고 ‘현상 유지’에 방점
11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승리해 재선에 성공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법학자 출신의 진보적 성향 정치인이다.
차이 총통의 가정 배경을 보면, 그는 대만 본토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린 본성인(本省人)으로 분류할 수 있다.
광둥성 출신 객가인(客家人)인 차이 총통의 조부는 대만으로 이주했다. 조모는 대만 원주민인 파이완(排灣)족이다.
차이 총통의 부친은 자동차 수리업으로 사업을 시작해 이후 부동산 투자로 영역을 넓혀 큰 부자가 됐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차이 총통은 내리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서 법학자로 성장했다.
대만 최고 학부인 대만대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와 런던정경대에서 각각 법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립정치대학 등 대학에서 오랫동안 법학 교수로 일했다.
학자이던 그를 정계로 이끈 것은 '대만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다.
본성인 출신 첫 대만 총통인 리덩후이는 국민당 소속 총통이면서도 대만의 독자적인 노선을 걸어가는 것을 추구했다.
리덩후이는 임기 말에 비밀리에 중국 본토와 대만이 별개의 나라임을 정립하는 이론인 '양국론'(兩國論)을 준비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책임진 것이 당시 교수 신분이던 차이 총통이었다.
2000년 대선에서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당선돼 첫 정권 교체가 이뤄지자 차이 총통은 양안 관계의 핵심 당국자로 전면에 나섰다.
양안 정책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인 대륙위원회 주임(장관)에 발탁되면서 민진당 정부의 양안 정책 핵심 브레인 역할을 했다.
이때부터 중국은 차이 총통을 대만 독립 세력(臺獨派)의 핵심 인사로 간주하면서 '눈엣가시'로 여기기 시작했다.
이후 입법위원(국회의원), 행정원 부원장(부총리) 등을 역임해 행정 경험도 풍부하다.
천수이볜이 급진적인 대만 독립 추진과 부패 스캔들로 민심을 잃고 2008년 국민당에 정권을 내주고 나서 차이 총통은 만신창이가 된 민진당 주석직을 맡아 당의 재건에 앞장서면서 핵심 지도자로 부상했다.
차이 이후 수년간 각종 선거에서 국민당에 7차례나 승리를 거두면서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2년 대선에서는 대만 최초 여성 총통 후보로 나섰지만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한 차례 패배를 맛보고 당 주석직을 잠시 내려놓았다.
그러나 2014년 90%가 넘는 당원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서 당 주석에 복귀했고 2016년 치러진 대선에서 국민당 주리룬(朱立倫) 후보를 꺾고 대만의 첫 여성 총통이 됐다.
학자 출신인 차이 총통은 대중을 압도하는 연설 능력 등 카리스마는 부족한 편이지만 인내심을 갖고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차이 총통은 합리적이면서도 진보적인 정치 성향으로 상대적으로 젊은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다.
대만에서는 지난 5월 민진당 주도로 동성결혼을 법제화됨으로써 동성 연인들이 법적으로 이성 부부와 같은 권리를 누리는 아시아 첫 지역이 됐다.
차이 총통은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성향이지만 총통 집권 후에는 급진적인 독립 추구 노선을 걷지 않아 중국을 먼저 자극하는 일을 만드는 것은 피하고 있다.
차이 총통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수용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면서 강력한 대만 주권 수호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차이 총통은 당장은 통일도 독립도 추구하지 않는 '현상 유지'에 방점이 찍힌 정책을 펴는 가운데 중국이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구체적인 독립 추구 절차를 밟는 데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또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은 정면으로는 부인하지 않지만 관련된 언급을 최대한 회피함으로써 갈등을 피해 가는 전략을 구사한다.
과거 민진당 소속 첫 총통인 천수이볜은 자신의 임기 내에 독립에 관한 개헌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선언하는 등 급진적인 독립 행보를 보여 중국의 격렬한 반발을 초래했다.
우방인 미국에서도 '골칫덩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대만의 고립을 자초한 바 있다.
차이 총통은 대만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국가인 미국과도 사상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무역전쟁 발발 이후 미중 관계가 악화하면서 미국에서는 중국 압박 카드로서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강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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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패색이 짙던 차이 총통이 홍콩 사태의 발발로 일거에 전세를 만회하였다. 이런걸 천운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직도 38% 라는 중국 해바라기들이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가야할 길이 먼듯. 중국이 대만이라고 그냥 놔두었겠나. 한국처럼 온갖 이권과 특혜로 정치인들을 회유하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