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1월7일 미국 조지타운대와 IBM의 ‘기계 번역’ 공개 실험에 수많은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러시아어를 전혀 모르는 여직원이 철자를 입력하면 2.5초 뒤에 영어문장으로 바뀌어 나왔다. 6개 문법 규칙과 250개 어휘로 구성된 이 시스템은 간단한 러시아어 문장을 영어로 자동 번역하는 수준이었으나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미국 주요 신문은 다음날 ‘조지타운 실험’을 머리기사로 다뤘다. 주간지와 월간지들도 심층기사를 실었다. 그럴 만했다. ‘인류가 바벨탑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는 이정표’를 만났다고 여겼으니까.
소설과 영화에도 곧잘 등장하는 자동 번역은 인간의 오랜 소망이었다. 고대 그리스철학에 능통했던 9~10세기 아랍 학자 알 킨디는 언어의 공통요소를 분별하는 공식이 있다고 믿었다. 프랑스의 르네 데카르트와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도 기계론적·귀납적 사고에서 같은 생각을 가졌다. 20세기 들어서도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지지부진했다. 조지타운대의 연구도 수년 동안 진척이 없었으나 신형 컴퓨터 IBM 701 투입과 미 국방부의 자금 지원 이후 탄력이 붙었다. ‘성공적인 공개 실험’에 고무된 연구진은 “앞으로 3~5년 안에 기계 번역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기대와 달리 자동 번역 기술의 발전은 더뎠다. 신뢰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가운데 한 달 임대료가 월 1만2,000~2만달러 수준인 컴퓨터를 돌리기도 어려웠다. 개인용 컴퓨터(PC)가 도입되고 컴퓨터의 가격 대비 성능이 크게 좋아진 1990년대 초반 이후 ‘통계 기반 기계 번역’이 나왔어도 결과는 마찬가지. 조지타운 실험처럼 규칙에 근거하는 기계 번역의 한계에 머물렀다. 주목할 만한 발전은 ‘인공신경망 번역(NMT)’이 도입된 2015년 이후. 문장 전체를 통으로 번역해 표현이 정확하고 부드러워졌다. 몇 개의 언어를 동시에 번역하는 다중 언어모델까지 나왔다.
방대한 데이터의 구축과 저장, 컴퓨터 연산처리 속도의 향상 덕분에 인간은 기계 번역을 신뢰할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설지도 모르지만 두 가지 의문이 남는다.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와 감정까지 기계가 옮길 수 있을까. 바벨탑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인간에게 도움이 될지도 궁금하다. 수많은 언어에서 생기는 고유한 사유체계와 문화가 획일성이라는 감옥에 갇힐 수도 있다. 지구의 7,000여개 말 중에 절반 가까이가 소멸 과정을 밟고 있다는데 가속될까 두렵다. ‘완벽한 기계 번역’ 뒤에 ‘빅브러더’가 숨어 있다면…?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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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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