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6년 1월3일 이탈리아 피렌체(플로렌스) 인근 체체리산. 44세의 화가이자 조각가·엔지니어가 날개폭이 10m에 이르는 날틀의 시험비행에 나섰다. 추락할 경우에 대비해 호수 옆에서 수차례 실험을 진행했지만 날틀은 뜨기조차 어려웠다. 이후 조종사를 바꿔가며 진행된 실험 결과도 마찬가지. 연이은 실패에도 이날의 실험이 기억되는 이유가 있다. 설계자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였기 때문이다. 걸작 ‘최후의 만찬’을 그리는 도중에 날틀을 설계하고 기체를 제작한 그는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새는 양어깨를 위로 올리고 날개의 끝을 쳐들어 두 날개와 가슴 사이에 공기를 모아 압축한다. 거기서 생긴 압력으로 날아간다.’ 끈질긴 관찰을 통해 ‘새는 수학 법칙을 통해 작동하는 기계와 같다’고 판단한 그는 ‘새가 하는 일이라면 인간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가늘고 강한 소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부드러운 비단을 덮어 날개를 만들었다. 다빈치는 마치 박쥐 날개처럼 생긴 날틀에 ‘우첼로(Uccello·거대한 새)’라는 이름을 붙였다. 날개 중앙의 가느다란 동체에 매달린 사람이 손으로 크랭크를 돌리고 발로 페달을 밟으면 약 200㎏의 힘을 발생시켜 비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다빈치는 약 5년간 우첼로에 매달렸으나 실패로 끝났다. 짧은 비행의 순간을 잊지 못하고 죽는 날까지 비행에 관심을 쏟았다. 제작과 실험으로 이어졌는지는 불명확해도 나선형 회전 날개와 낙하산의 설계도까지 그렸다. ‘단 한 번만이라도 비행했다면 하늘이 마음의 고향이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라고도 썼다. 동력 엔진이 없던 시대에 그의 실험은 끝내 성공할 수 없었지만 영감과 아이디어는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독일 오토 릴리엔탈의 글라이더 활강 성공(1891년)까지 모든 날틀의 형태가 박쥐 날개 형태를 따랐다. 러시아 태생인 이고리 시코르스키는 다빈치의 나선형 날개에서 얻은 영감으로 최초의 실용 헬리콥터를 선보였다.
우리나라도 날틀과 연관이 없지 않다.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에서 김제 출신 정평구가 비거(飛車)를 만들어 공격과 양민 구출에 활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 등 강대국에 둘러싸여 신음하던 이탈리아의 다빈치와 외적의 침입을 받은 조선의 정평구는 똑같은 제작 동기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우리는 사서 몇 권의 단순 기록에 불과하다는 점. 크기나 모양새에 대한 묘사나 그림이 전혀 없다. 정교한 기록문화의 부재는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이제부터라도 도전하되 쓰고 그려서 보존했으면 좋겠다.
<
권홍우 선임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