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9년 4월15일, 지금의 파키스탄 라호르 지역의 무슬림 집안에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30세가 되던 해 여행 중 급류에 휩쓸렸다가 사흘 만에 목숨을 건진 그는 힌두교도 아니고 이슬람교도 아닌 새로운 종교에 눈을 뜨게 된다. 세계 5대 종교인 시크교를 창시한 ‘구루 나나크(Nanak)’다.
힌두교의 신애(信愛·바크티) 신앙과 이슬람교의 신비사상을 융합한 시크교는 약 2,300만명의 신도를 두고 있다. ‘신은 오직 하나’를 기본교리로 삼았으며 사제가 따로 없어 성별에 관계없이 성인이면 종교의식을 행할 수 있다. ‘시크’는 산스크리트어로 ‘교육’ 또는 ‘학습’이라는 뜻의 ‘시스야(sisya)’에서 나왔다는 설과 ‘가르침’이라는 ‘식사(siksa)’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공존한다. 나나크는 신이 만물을 창조했으며 영적 교감이 뛰어난 자만 신을 만날 수 있다면서 내면의 수양을 강조했다. 사회 변혁가의 면모도 보였던 그는 카스트 제도에 강하게 반대했으며 하층민도 해탈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교리를 설파했다. 세례를 받은 시크교도 남자는 ‘사자’를 뜻하는 ‘싱(Singh)’, 여자는 ‘공주’를 뜻하는 ‘카우어(Kaur)’라는 성을 받는데 인도에서는 이런 성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2004년에는 시크교가 2%에 불과한 인도에서 첫 시크교도 출신의 만모한 싱 총리가 배출됐다. 10년간 인도 총리를 지낸 싱은 재임 기간 힌두교와 시크교의 반목을 포함한 종교갈등을 지혜롭게 조율했던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 국경을 맞대고 영토분쟁을 벌이던 중국·파키스탄과 큰 마찰 없이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매년 경제성장률 8% 이상을 달성하면서 역대 최고 총리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최근 인도에서 시민권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시위로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등에서 건너온 불법 이민자 중 힌두교나 시크교·불교 등 5개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는 시민권을 부여한 반면 무슬림에게는 시민권을 주지 않아 이슬람교도가 반발한 것이다. 인도 정부는 무슬림으로부터 종교적인 박해를 받는 소수민족을 보호하려는 취지라며 시위대를 폭도로 몰고 가 무슬림의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다. 당초 취지가 어땠든 특정 종교만 시민권에서 제외한 조치는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정민정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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