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5년 오스만튀르크의 술탄 슐레이만이 최정예 전사 7만명을 이끌고 이탈리아 남쪽 지중해의 섬나라 몰타를 향해 진격했다.
성 요한 기사단을 치기 위해서였다. 기사단은 십자군전쟁 이후에도 스페인의 카를로스 5세로부터 영지로 받은 몰타를 근거지 삼아 이슬람세력을 괴롭히고 있었다.
더욱이 터키 영향권이던 북아프리카에까지 손을 뻗쳐 술탄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당시 몰타 병력은 기사단과 원주민 등 수천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들은 약 4개월(3개월 3주 3일)을 버텨냈고 마침내 승리했다.
바로 몰타공방전(Great Siege of Malta)이다. 이 전투는 한 시대를 마감하는 신호탄이었다.
6년 후인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기독교 연합군에 패한 오스만튀르크는 지중해 제해권을 잃고 만다. 이렇게 몰타가 역사의 물줄기를 돌린 격전지가 된 진짜 이유는 지중해 중추의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외세의 침입이 빈번했다. 카르타고·로마·시칠리아와 스페인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1789년에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점령됐고 2년 후 다시 영국으로 바뀌었다.
1989년 12월 냉전 종식의 한 장면으로 기록되는 몰타회담이 열린 연유도 지정학적 중요성에서 찾을 수 있다. 1964년에야 독립국이 됐지만 영국 연방이다.
이런 굴곡진 역사와는 달리 6개 섬으로 이뤄진 몰타의 자연환경은 ‘지중해의 보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 수도인 발레타는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만큼 볼거리가 풍부하다.
‘다빈치코드’ ‘왕자의 게임’ 등 수많은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몰타 곳곳이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 하지만 길지 않은 건국역사 때문인지 사회주의·친서방노선을 오가면서 인구 50만명 소국인 몰타의 정치상황은 불안정한 편이다.
2013년 친서방인 조지프 무스카트 총리 집권 이후 안정되는 듯하더니 다시 혼돈에 빠지고 있다. 현 정부의 부정부패를 캐던 탐사기자 피살사건에 비서실장 등 최측근들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나자 무스카트 총리가 1일 내년 1월12일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권력 내부의 부패가 정권 붕괴를 재촉하는 것은 큰 나라든 작은 나라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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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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