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됐습니다.” 38년 전 밤마다 10시가 되면 라디오에서 귀가를 종용하는 여자 성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1시 30분에는 막차와 택시를 잡으려는 이들로 거리가 야단법석이었고 자정에는 사이렌 소리와 방범대원들의 호각소리가 요란했다.
야간통행 금지가 시작된 것이다. 통금 이후에는 여관으로 간 ‘간 큰’ 연인들이 있는가 하면 술집 문을 잠그고 밤새 퍼마시는 술꾼들도 많았다. 가수 배호는 ‘0시의 이별’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가 통금위반으로 바로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통금은 1945년 9월 미 군정이 치안과 질서유지를 위해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울과 인천에서 밤8시에서 다음날 새벽5시까지 운영되다가 6·25 전쟁 때 전국으로 확대됐고 그 후 시간은 자정~새벽4시로 완화됐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통금은 조선 시대에 벌써 존재했다. 시작 때(인정) 종을 28번 치고 끝날 때(파루) 33번 치면서 이를 알렸으며 허락 없이 어겨 잡히면 경무소에서 밤을 보낸 후 다음날 곤장을 맞고서야 풀려났다. 태종실록에는 대사헌 이원이 통금을 어겨 파직됐다는 기록이 있다. 풍속화가 신윤복이 그린 ‘야금모행’에는 양반이 기생과 거하게 놀고 나오다 순라군을 마주친 장면이 잘 묘사돼 있다. 통금은 유럽에서도 널리 활용됐다. 중세 영국에서는 밤8시가 지나면 화재예방을 위해 강제 소등하고 통행을 금지했다. 영어로 통금은 ‘커퓨(curfew)’라고 하는데 ‘불을 덮어서 끈다’는 뜻인 프랑스어 ‘couvre-feu’에서 유래했다.
우리나라에서 통금이 사라진 건 올림픽 유치 때문이었다. 1981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88 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위해 총회를 열었는데 통금이 화두가 된 것이다. 자칫 일본 나고야에 개최권을 뺏길 수 있는 상황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면서 이듬해 폐지됐다.
야간통행 금지령이 홍콩에서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홍콩 당국이 ‘긴급법’을 확대 적용해 야간통행 금지를 하거나 최악의 경우 계엄령을 발동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다.
교통대란에 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지고 시내 곳곳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등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금을 한다고 해도 문제가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 같다.
홍콩인들이 하루속히 평화롭고 슬기롭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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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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