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백남준을 만나다 (11) 백남준과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비엔날레 총감독 1992년 회고전 초청, ‘한국관’ 건립 이야기 꺼내며 사전작업
▶ 지노 디마지오 무디마미술관 관장도 이탈리아 정부 설득 ‘도우미’로 나서
독일·일본관 사이 화장실터 눈여겨 보고 그림까지 선물하며 시 관계자 움직여
1994년 7월에 건립 허가 승인 획득, 뒷문 출구 전시관 증축작업 11월 시작
백남준이 1991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자신의 개인전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백남준은 여기서 시작해 1993년까지 유럽 순회전을 펼치며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 건립 계획을 펼쳐갔다. [사진제공= 박영덕]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마지막 국가관으로 건립된 한국관 외관.
“한국미술이 세계로 나가려면, 한국에서 국제적인 작가가 나오려면 당연히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이 있어야 해.” 백남준은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 선정된 자신의 전시회와 대상인 황금사자상 수상에 대한 포부도 컸지만 ‘한국관’이 마음에 걸렸다.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1895년부터 매 2년마다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는, 비유하자면 ‘미술계의 올림픽’이다. 옛 군수공장 자리인 아르세날레의 본 전시와 함께 카스텔로 공원인 자르디니에 ‘국가관’이 조성돼 있어 실제로도 국가 대항전 분위기를 풍긴다. 지난 1986년에 처음 베니스비엔날레에 참가한 한국은 독립 국가관 없이 이탈리아관 지하의 4평 남짓한 전시공간에서 ‘셋방살이’를 했다. 스스로를 “가난한 나라에서 온 작가”라 종종 칭했던 백남준은 그 설움이 싫었다. 무엇보다 한국관이 있어야 한국 미술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100년 전통의 베니스비엔날레에 한국관이 낄 틈은 없어 보였다. 자르니디의 국가관은 20세기 초 강대국을 중심으로 일찌감치 ‘자리 잡기’가 끝난 터였다. 나라의 힘이 세면 목 좋은 자리에 큼지막하게 국가관이 들어섰다. 노르웨이·스웨덴·핀란드가 스칸디나비아 3국으로 하나의 국가관을 쓰고, 독일이 동·서독관으로 나뉘었다가 합쳐지고, 하나였던 체코슬로바키아관이 체코관과 슬로바키아관으로 갈라지는 등의 작은 변화가 있었을 뿐이다. 호주관을 끝으로 베니스 시(市)는 15년 동안 새로운 국가관의 건립을 불허했다.
수상도시 베니스가 물에 가라앉는다는 것이 수 년째 섬 전체에 신축 허가를 내지 않는 이유였다. 15세기에 지어진 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베니스는 도시 전체가 문화재다. 벽이 헐거나 수도 고장 등으로 보수공사가 필요할 때도 문화재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곳이다. 더욱이 자르디니는 녹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공원이라 시의회 의결을 한 번 더 거쳐야 한다. 비엔날레 전시를 위해 전기설비를 하거나, 땅을 파거나, 나뭇가지를 자르는 등의 행위도 엄격히 금지된다.
‘한국관’ 사전작업은 1992년부터 시작됐다. 백남준은 그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자신의 대규모 회고전 ‘비디오 때·비디오 땅’과 연계한 국제 심포지엄으로 ‘현대미술 세기의 전환’을 서울 힐튼호텔에서 개최하면서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아킬레 보니토 올리바를 꼭 참석하게 했다. 자신의 비엔날레 전시와도 무관하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넌지시 ‘한국관’ 이야기를 꺼냈다. 언감생심 신축 건물은 생각지도 못하는 자르디니에 한국관이라니 의외일 법했다.
하지만 보니토 올리바는 일찍이 1980년에 비엔날레 특별전 성격의 젊은 작가 발굴전인 아페르토(Aperto)를 기획했고 아르세날레에서 처음 전시를 열었던 인물이다. 백남준은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그를 개척 정신이 있는 인물로 판단했고 ‘말이 통할 만한 상대’로 보았다. 난색을 표했지만 백남준은 문화부 장관과 문예진흥원(현 문화예술위원회) 관계자들을 만나게 하며 협공을 이어갔다. 당시 1993년 대전엑스포 전시행사 총 책임자였던 이용우는 보니토 올리바에게 특별전 커미셔너를 제안했다. 전시를 매개로 그는 계속 한국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고 앞장선 백남준과 한국의 정부 관계자들의 열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993년 6월 초, 베니스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밀라노의 팔라초 레알레에서 백남준의 개인전이 열렸다. 백남준은 비엔날레 관람을 위해 이탈리아를 방문한 한국 미술계 인사들을 밀라노로 불러 모았다. 임영방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뉴욕에서 밀라노로 직행했다. 이들은 여기서 “자르디니에 어떻게 한국관을 만들 것인가”를 논의했다. 백남준의 친구이자 플럭서스(Fluxus)의 막내 격인 지노 디마지오 무디마미술관 관장이 이탈리아 정부를 설득하는 ‘현지 도우미’로 나섰다. 한국관 조성을 위한 본격 행보가 시작됐다. 쉽지는 않았다. 우선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백남준은 독일관과 일본관 사이의 구릉에 있는 화장실 자리를 눈여겨봤다.
“한국 사람들 진짜 머리 좋아. 공사장 옆에 이동식 간이 화장실 봤어? 난 깜짝 놀랐지 뭐야. 한국 정부가 화장실 귀한 베니스에 공중 화장실 300개 정도 기증하겠다 하고, 그 화장실 겸한 관리사무소 자리에 한국관을 짓자 하면 어떨까?”
기상천외한 그런 발상이 바로 ‘백남준 스타일’이다. 하지만 우리식 간이 화장실은 냄새가 진동하는 ‘푸세식’이라 서양인들에게는 거부감이 크다. 합리적인 지출로 이탈리아와 베니스 정부의 환심을 사려 했으나 작전을 바꿔야 했다.
한편으로는 한국관 건립 실패의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다. 임영방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백남준과 함께 한국 미술 특별전 ‘호랑이 꼬리(The Tiger’s Tail)’를 기획했다. 국가관이 없더라도 세계 미술계의 이목이 쏠리는 시기의 베니스에서 특별전 형식으로 한국 현대미술을 보여주자는 뜻이었다.
백남준 자신과 한국관 건립에 발 벗고 나섰던 조각가 조성묵(1940~2016)을 비롯해 곽덕준·김수자·윤석남·임옥상·하종현 등 15명이 베니스의 팔라초 벤드라민 카르미니에서 전시를 열었다. 지금도 베니스비엔날레 기간에는 상설 국가관이 없는 나라의 전시, 국가관과는 별도로 기획된 특별전 등이 베니스 현지 건물을 빌려 곳곳에서 열린다.
1995년의 ‘호랑이 꼬리’ 전시는 현지 건물을 전시공간으로 개조해 여는 특별전의 시초가 됐다. 한국의 부동산 임대사업의 아이디어가 만든 전시방식인 셈인데, 이후 급속히 확산돼 베니스의 건물주들은 비엔날레 기간에 상당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화장실까지 기증하겠다는 백남준의 발상은 수십 년간 기존 국가관의 증·개축도 불허하던 베니스시 관계자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1995년은 비엔날레 100주년의 해였으므로 새로운 시도의 명분이 가능했다. 경쟁이 불붙었다. 국가관 신설을 신청한 나라만 23개국이었다. 아시아 국가관으로 일본관이 유일하다며 중국이 강력하게 나섰다. 또 다른 경쟁자 아르헨티나의 경우 인구의 30%가 이탈리아인이라 비엔날레 개최국인 이탈리아가 각별하게 보는 나라였다.
첩첩산중에 몰린 백남준은 자신이 가진 최강의 무기인 ‘작품’을 내놓기로 했다. 백남준은 간략한 드로잉과 판화를 종종 처세술에 이용했다. 액자에 끼우고 번듯하게 포장한 ‘뇌물’ 성격은 아니었다. 백남준의 이름값 때문에 받는 이들은 누구나 반색했다. 당시 백남준의 인기가 얼마나 높았느냐면 1994년 독일의 경제월간지 캐피탈(Capital)에서 ‘세계 100대 미술가’ 중 5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미국의 브루스 나우만, 독일의 게르하르트 리히터와 지그마 폴케, 게오르그 바셀리츠 등이 상위권을 장식하던 시절이다.
백남준은 간밤에 호텔 방에서 쓱쓱그린 그림들을 돌돌 말아 아침에 내놓았다. 사람을 시켜 베니스 시장과 관계자들에게 그림을 보내고 몇 날 지난 후에 슬그머니 선문답처럼 ‘용건’을 전달했다. 사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내놓는다는 것은, 더군다나 가진 것이 작품뿐인 이들에게는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백남준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는 소수의 권력자와 부자가 즐기던 전통적인 예술에 반기를 들었고 더 많은 대중이 함께 즐기는 예술을 추구했다. 누구나 향유하고 소유할 수 있는 예술의 공유가치를 강조했던 백남준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백남준이 주도면밀한 전략가는 아니다. 다만 그는 큰 방향을 설정하고 길을 만들며 전진하되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상황은 특유의 아이디어로 대처하는 ‘순발력있는 전략가’다. 베니스비엔날레라는 목적지를 향하면서 그가 마음에 품은 세 가지, 즉 황금사자상 수상과 한국관 건립, 그리고 한국 현대미술의 현재를 보여주는 기획전시는 모두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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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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