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6월4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전날 시위자들을 유혈 진압했고 시민들은 겁에 질려 도망쳤다. 4대의 탱크가 진압을 마무리하기 위해 톈안먼광장으로 막 진입하려는 순간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한 청년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1열 종대로 움직이던 탱크는 잠시 멈칫했다. 이윽고 선두에 있던 탱크는 청년을 피해 방향을 틀었지만 청년은 다시 선두 탱크 앞에 서서 꼼작하지 않았다. 탱크는 차마 청년을 밀어붙이지 못한 채 멈췄고 잠시 후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청년을 끌고 가면서 상황은 끝났다.
AP통신 사진기자인 제프 와이드너는 인근 호텔에서 이 장면을 찍었고 사진은 중국 공산당이 시민을 학살하는 무자비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사진을 접한 전 세계 사람들은 이 청년에게 ‘탱크맨’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세월이 흐른 뒤 사람들은 이 청년을 찾았지만 종적이 묘연했다.
2017년 홍콩 핑궈르바오는 이 청년의 이름이 장웨이민이라며 근황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장웨이민은 톈안먼사태 당시 탱크를 파괴한 죄목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이후 20년으로 감형받아 출소했지만 이번에는 도박으로 다시 수감됐다.
8월 CNN 등 외신은 홍콩 시위 현장에서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눈 경찰을 맨몸으로 막아선 한 남성의 사진을 보도했다. 사진에서 남성은 한 손에 휴대폰을, 다른 한 손에는 비닐우산을 든 채 팔을 벌려 경찰을 막았다.
사진을 본 홍콩 시민들은 “1989년 베이징 탱크맨이 2019년 홍콩 피스톨맨이 돼 돌아왔다”며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칠레에서는 6일 정부가 지하철 요금 30페소를 인상한 것이 도화선이 돼 시위가 한창이다.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면서 시위가 격해지자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장갑차까지 동원해 진압에 나섰다.
22일 AP 등 외신은 빨간 모자를 쓴 한 여성이 칠레 국기를 들고 장갑차를 향해 걸어가는 사진을 해외로 전송했고 이를 본 사람들은 “칠레판 탱크맨이 나타났다”며 환호했다.
연약한 일개 시민이 탱크와 장갑차를 세우고 총구를 막을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지만 총구를 막는 시민이 있는 것을 보면 결국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구 어디서건 시민의 희생 없이도 민주주의가 잘 정착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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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석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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