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조금씩 여물어간다. 잠이 덜 깬 파란 햇살이 살짝 여름을 붙들고 있지만, 아침 공기는 차갑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아래 나무끝을 타거나 장식처럼 뿌려져서 오색 찬란한 빛깔이 박히며 물들어 가는 나뭇잎들과 작지만 몽글몽글 솜처럼 하얗게 피어난 뭉게구름을 걸친 숲속, 그 속에서 초록잎에 반사되는 햇빛을 품은 자연풍경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독특하고 빼어난 조각품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어김없이 선물처럼 주시는 계절의 향연에서 그분의 손길을 느낀다. 신선하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그 공기를 찌르는 청아한 산새의 노래를 벗삼아 천천히 걷는다. 새삼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온 몸에 행복이 감긴다.
은총이 가득찬 예쁜 가을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세번째 손녀가 태어났다. 바로 얼마전 세상에 나오자 마자 젖을 빨듯한 입술의 쫑긋거림, 하품과 재채기등 연습도 없이 어찌 그리 자연스러울수 있을까? 익숙치 못한 세상 빛에 눈을 뜨기 힘들어하지만, 아빠를 닮은 뚜렷한 쌍꺼풀은 보였다. 딸과 사위가 모두 아기를 좋아해서 아들 딸 안가리고 무조건 셋을 낳겠다던 그들의 계획은 축복처럼 이루어졌다.
딸은 임신초부터 아기에 대한 기대가 컸다. 설렘과 호기심과 기다림으로 마지막 달의 산모의 모습은 차분한 성격과는 달리 초조함이 보였다. 빠른 분만을 하기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열심히 걷기도 했다. 예쁜 아기를 기대하며 태교를 하고 아기와 대화도 하다가 진통이 시작되자마자 병원을 향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신생아분만실로 찾아가서 예쁜 천으로 꽁꽁 싸놓은 아기를 안은 순간의 나의 기쁨은 세상을 다 갖은 것 같았다. 얼마나 예쁘고 앙증스럽고 귀엽던지 아기와 눈을 맞추며 꼬옥 안아 주었다. 수많은 별들중에 한 별이 가슴에 들어오고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너와 나의 우주의 경험’을 뇌리에 박으면서… 손녀와 할머니의 만남은 우주의 동작으로 이루어진 인연이다. 아기는 말은 못해도 열달동안 좁은 공간에서 해방되어 접한 넓은 세계가 좋은지 다리를 쭉쭉 펴며 팔을 양쪽으로 휘젓는다. 우주를 주관하는 조물주가 만세 전부터 인간의 탄생을 계획한다는 말씀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미지의 길을 나설 때 흥분과 설렘, 새로운 곳에 대한 동경, 상상을 하는 것처럼, 아기도 엄마와의 첫 대면을 기대했을까? 우주와의 영혼 소통은 있었을까? 아기에게는 삶의 긴 여정이 시작되고 형제들과 부모 등 선택한 건 아니지만 선택되어진 인연으로 그들과의 표정, 소리, 행동 하나하나에서도 많은 체험을 얻게 되고 교육을 받고 나름대로 노력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말이 펼쳐나가게 될 것이다. 희로애락으로 다채롭게 열릴 일상생활에서 순간의 만남이 운명을 결정하고 영원을 향한 여로가 되는 것이다. 손녀의 여행지가 평안하고 평탄한 행운의 길로 이어지길 바란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인구 절벽을 향해 가고 있다. 최근 4년간 한 가임여성(15세-49세) 에게서 기대되는 평균 출산율이 1.11이라는 통계청의 발표가 있었다. 전 세계 국가중 최하위라 한다. 아이를 낳아서 얻는 충만한 기쁨보다 아이를 낳아 부닥치는 구체적인 고통과 손해가 더 크다는 걸 알기에 아이를 안 낳는다고 한다. 아기를 안 낳던 혹은 못낳던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부에서도 신경을 더 써서 출산율이 늘어가길 바랄 뿐이다.
바람타고 은은히 풍기는 가을 향기가 마음을 차분하고 사색하게 만든다. 갑자기 눈 앞에 툭 떨어지는 밤송이를 따라 올려다 본 밤나무에서는 탐스럽게 달려있는 밤송이들이 엄마의 손을 꼭 붙들고 있다. 양육하고 번성하는 자연은 단순하지만 질서있게 이어가고 있다. 해마다 아름다운 계절을 주신 이에게 우리는 그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공지능등 무섭게 발전하는 세상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고 알 수도 없는 조물주의 어떤 계획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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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잔 /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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