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영 ‘새’
평해 오일장 끄트머리
방금 집에서 쪄내온 듯 찰옥수수 몇 묶음
양은솥 뚜껑째 젖혀놓고
바싹 다가앉은
저 쭈그렁 노파 앞
둘러서서 입맛 흥정하는
처녀애들 날 종아리 눈부시다
가지런한 치열 네 자루가 삼천 원씩이라지만
할머니는 틀니조차 없어
예전 입맛만 계산하지
우수수 빠져나갈 상앗빛 속살일망정
지금은 꽉 차서 더 찰진
뽀얀 옥수수 시간들!
김명인(1946- ) ‘찰옥수수’ 전문
언젠가 아주 오래 전, 강원도 도계 장터를 지나간 적이 있다. 그곳에 전을 부쳐 파는 예쁜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돈 계산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옆에 계신 나물 파는 아주머니가 전 부치는 아주머니의 돈 주머니를 열고 닫고 하며 대신 계산해주셔야 했다.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놓고 전을 부쳐 파는 그런 오래된 시골 장이었다. 이 시를 읽으며 문득 그 오랜 일이 훈훈하게 다시 떠오른다. 두 분 다 지금쯤은 할머니가 되셨겠지. 눈부신 처녀애들의 시간과 만나는 틀니조차 없는 할머니의 빛나는 시간처럼, 그 때 그 시간이 내 마음 속에서 빛난다. 찰지고 뽀얀 기억 속의 사진 한 장이다. 임혜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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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19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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