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1년 빅토리아 여왕 시절 인쇄업자이자 전도사인 토머스 쿡은 금주 캠페인을 널리 알리겠다며 이색적인 여행상품을 만들었다.
영국 중부 레스터에서 불특정 일반인을 대상으로 여행객을 모아 금주 집회가 열리는 러프버러로 보내는 것이었다.
쿡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아홉 량의 전세열차에 사람 570명을 태워 왕복 30마일을 오가는 단체여행을 성사시켰다.
당시 대중에게 광고된 최초 유람 열차의 가격은 1인당 1실링이었다. 여기에 식사까지 포함됐으니 가격 메리트도 충분했을 법하다. 그가 오늘날의 패키지상품을 처음으로 선보인 ‘현대여행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쿡의 열차여행은 부유층의 독점물로 여겨졌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상품이었고 이에 반발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영국 시인 조지 가든 바이런은 “단체여행객들이 풍광에 독을 뿌린다”고 비판했고 그에게 영리에만 밝고 부도덕한 인물이라는 비난까지 쏟아졌다. 하지만 쿡은 여행이야말로 대중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며 관광 대중화에 적극 나섰다.
1851년 런던 ‘수정궁 대박람회 여행’에는 15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대박을 터뜨렸으며, 1873년 파리와 제네바 등을 오가는 세계 최초 관광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여기에는 단순하고 저렴하며 금주를 실행하는 3대 미덕을 지킨다는 그의 여행철학 또한 깔려 있다.
토머스 쿡이 자신의 이름을 따 만든 여행사는 이후 주인이 여러 차례 바뀌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1928년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를 소유하고 있는 프랑스-벨기에 회사 ‘국제침대차 회사’에 인수된 후 독일군에 몰수당하기도 했으며, 1941년에는 영국 정부의 국영 여행사로 변신하기도 했다.
여행사 토머스쿡은 1970년대 전성기를 맞아 독자적인 여행자수표를 발급했고 열차 시간표 ‘토머스 쿡 타임테이블’을 내놓아 배낭여행자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을 정도였다.
17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토머스쿡이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결국 파산을 선언하고 청산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연간 여행객 670만명이 이용하던 여행사의 파산으로 영국 정부는 관광객 15만명의 귀국을 위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송환작전을 펼치고 있다.
토머스쿡은 자유여행 위주로 재편되는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좌초되고 말았다고 한다. 변화에 적응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면 어떤 분야든 제대로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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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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