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살 ·부정부패 등 폭정 부인에게 대통령직 주려다 2017년 쿠데타로 물러나 국민 “낭비할 눈물 없다”
아프리카 장기집권 독재자의 상징적 인물로 남아프리카 짐바브웨를 37년간 통치하다 2년 전 축출된 로버트 무가베(사진·AP) 전 대통령이 9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에머슨 음낭가과 짐바브웨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무가베 전 대통령이 숨졌다고 밝혔다.
영국 BBC 방송은 무가베 대통령의 가족을 인용해 그가 싱가포르에서 건강이 악화해 숨졌다고 보도했다. 무가베는 올해 4월부터 싱가포르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과 중국은 무가베의 사망에 애도를 표현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무가베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식민주의에 대한 짐바브웨의 지속적이고 용감한 투쟁은 우리(남아공)의 반(反)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투쟁을 고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짐바브웨 국민의 반응은 싸늘했다. 짐바브웨인으로 보이는 한 네티즌은 “애도는 혼자 하라. 나는 (무가베를 애도하는데) 낭비할 눈물이 없다”고 비판했다.
무가베는 2년 전 퇴진하기 전까지 세계 최장기, 최고령 집권자로 통했다. 1980년부터 장기 독재를 해 온 무가베는 41살 연하의 부인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려고 시도하다가 2017년 11월 군부 쿠데타와 의회의 탄핵 절차 등에 직면한 뒤 사임했다.
무가베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옛 로디지아의 백인 정부를 무너뜨리고 짐바브웨 건국에 앞장선 독립투사로 국민의 칭송을 받다가 독재자로 추락하는 ‘극과 극’의 모습을 보였다.
무가베는 1924년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태어난 뒤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는 학구파였고 17세 때 교사자격증을 취득했다. 마르크스 사상을 받아들인 무가베는 남아공 포트해어 대학에 진학하고 가나에서 교사 생활을 했다.
1960년 로디지아로 돌아온 그는 1964년 국민저항 운동을 이끈 죄로 이후 10년간 정치범 수용소와 감옥에서 고초를 겪었다. 무가베는 1980년 선거에서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등에 업고 56세에 짐바브웨의 초대 총리에 올랐다.
그는 집권 초기 인종화합 정책을 선언하고 인구 다수를 점하는 흑인을 위한 교육과 보건 부문 개혁으로 국제사회의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독재자로 변신해 반대 인사 탄압과 부정부패, 사치 등으로 국가를 파탄에 빠뜨렸다.
AFP 통신은 북한의 지원을 받아 훈련된 특수부대가 구쿠라훈디 작전이란 이름으로 은데벨레족 민간인 약 2만명을 고문하고 살해했다고 보도했다. 은데벨레족은 무가베의 정적을 지지한다는 이유 때문에 학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 측면에서도 자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을 사실상 국유화하려 드는 등 실정이 잇따랐다.
이로 인해 해방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에서 가장 의식주가 양호한 나라로 꼽혔던 짐바브웨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추락했고, 2009년에는 천문학적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자국 화폐를 포기하고 미국 달러를 대신 쓰는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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