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8월23일 오후7시. 발트3국인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시민 200만명이 거리로 나섰다.
각각의 수도를 연결해 국토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총 675㎞의 도로에서 손에 손을 잡고 인간띠를 만들어 “자유”를 합창했다. “라이스베스” “브리비바” “바바두스” 말은 달랐지만 소련 공산당 치하에 있던 이들의 눈에는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는 50년 전 같은 날 체결됐던 독소불가침조약에 항거하려는 평화시위였다. 이 조약을 계기로 독일은 같은 해 9월 폴란드를, 소련은 이듬해 6월 발트3국을 점령했다.
시위 7개월 만에 리투아니아가 소련에서 가장 먼저 독립을 성취했고 나머지들도 소련 공산당 붕괴 후 독립에 성공했다.
압제에 맞서 인간띠를 만들고 평화적으로 저항한 역사는 훨씬 오래됐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의 스파르타동맹과 아테네동맹 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승기를 잡은 스파르타군이 아테네의 성벽을 에워쌌다. 그러자 피리 부는 여인을 앞세운 아테네 아녀자들이 성을 나와 손에 손을 묶고 성 둘레를 싸고 돌았다.
당대 그리스 사상가였던 크소네폰은 “스파르타의 그 강한 군율이나 화살도 인간 전선 앞에서는 무력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우리 역사에도 비슷한 얘기들이 전해온다.
임진왜란 때 외장 구로다 나가마사가 3,000명의 병력으로 황해도 연안성을 포위했다.
이에 부사 이정암이 최전선에 마른 풀 섶으로 단을 높이 쌓아 그 위에 올라앉아 불을 지르고 처첩·자제·노비들로 인간사슬을 맺어 싸고 돌게 함으로써 도망치는 군민들을 붙들어 대첩을 거뒀다는 얘기다.
송환법을 반대하는 홍콩 시위대가 지난 23일 60km에 달하는 거대한 인간띠를 만드는 ‘홍콩의 길’ 시위를 벌였다.
30년 전 같은 날 시위를 벌여 독립의 발판을 마련한 ‘발트의 길’ 시위를 재현한 것이다. 주최 측은 홍콩 내 3개 노선 39개 지하철역을 잇는 도로에서 인간 띠를 만들었다.
당초 예상의 세 배에 달하는 시민들이 참여해 스마트폰 손전등 기능으로 촛불을 만들며 장관을 연출했다. 홍콩 시위대가 날리는 분노의 화살은 결국 중국 공산당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예삿일이 아니다. 자유를 향한 그들의 용기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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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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