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영국 맨체스터대의 오래된 캐비닛에서 한 천재 수학자의 편지와 원고 더미가 발견됐다.
이 대학에서 컴퓨터연구소 부소장으로 재직했던 앨런 튜링의 소지품들이다. 1948년부터 맨체스터대에서 인간의 뇌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기계를 만드는 데 골몰했던 튜링은 이 원고 속에 오늘날 인공지능(AI) 개념의 토대가 되는 생각들을 가득 담아 놓았다.
단순 논리과제 풀이를 수행할 수 있는 기계에 인간적 특성을 불어넣는 것이 가능할까. 그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튜링 테스트로 불리는 실험을 했다.
두 명의 인간과 컴퓨터 한 대를 각각 다른 세 개의 방에 배치하고 한 명의 인간이 다른 두 방에 질문을 보내도록 했다.
그에게 돌아온 답변 가운데 어떤 것이 인간이 보낸 답이고 어떤 것이 기계로부터 온 것인지 가려내지 못하면 그 기계는 인간처럼 사고하는 기계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이 튜링의 생각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AI 개념의 모태가 된 실험이다. 튜링을 AI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191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수학 재능이 뛰어났다. 18세에 케임브리지대에 입학했고 24세이던 1936년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자 영국 정부는 독일 잠수함부대 암호 해독을 위해 그를 정부암호학교 수학팀장으로 발탁했다.
1992년 한 방송 프로에 출연한 동료는 “튜링이 없었다면 영국은 전쟁에서 패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능력은 탁월했다.
천재에게 동성애가 범죄였던 시절을 사는 것은 불행이었다. 1951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여성호르몬을 강제 주입받는 화학적 거세를 당했다.
수치심을 못 이긴 그는 40대의 젊은 나이에 청산가리가 담긴 사과를 베어 무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
영국 왕실은 사후 59년 만인 2013년 그를 사면했다. 잉글랜드의 동성애 처벌법은 1967년에야 폐지됐다.
영국 중앙은행은 15일 2021년부터 유통되는 50파운드 지폐의 초상 인물로 튜링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컴퓨터공학과 AI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에게 합당한 대우다. 한때 영국은 그의 이름마저 거론하기를 꺼렸다. 격세지감이다.
수치심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던 튜링은 과연 70여 년 뒤 자신의 얼굴이 지폐에 새겨질 것이라 상상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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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문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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