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7월 중국 북서부 농가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눈을 뜨고 태어난 그를 비범하게 여겼지만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3년 뒤 13대 달라이 라마의 후계자를 찾으러 사절단이 그의 집에 왔을 때 아이는 그들에게 13대 달라이 라마가 쥐고 다녔던 염주를 달라고 했다.
사절단 대표였던 케상 린포체가 자신이 누구인지 맞히면 염주를 주겠다고 하자 그는 ‘세라 사원’의 주지라고 주저 없이 답했다.
13대 달라이 라마의 환생임을 부인할 수 없었던 사절단은 그를 티베트 성지 라싸로 데려가 지혜의 바다란 뜻의 ‘텐진 갸초’라는 법명을 지어줬다.
2년여간 그의 부모가 불렀던 라모 톤둡을 빼면 80여년 넘는 동안 그는 텐진 갸초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흔히 그를 지칭하는 달라이 라마는 ‘교황’ 혹은 ‘대통령’과 같은 일반 명사다.
2년 뒤인 1940년 텐진 갸초는 포탈라궁에서 즉위식을 갖고 티베트의 지도자 자리에 오른다. 정신적 스승인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믿는 티베트 전통에 따른 절차다.
다섯 살에 14대 달라이 라마가 된 텐진 갸초의 앞길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60년 전인 1959년 3월31일 티베트 분리를 반대한 중국의 학살 만행을 피해 인도 망명길에 오른 후 험난한 비폭력 독립운동의 길을 걷는다.
1989년 세계 평화를 위한 비폭력주의 운동 등에 공헌한 점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지난달 말 중국 정부는 그의 망명 60주년을 희석하기 위해 ‘티베트 민주개혁 60주년’ 기념식을 열고 같은 이름의 백서까지 펴냈다. 물론 티베트의 강제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백서에서 “티베트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깊은 사회 변혁이 이뤄졌다”고 했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국몽으로 포장된 패권주의를 믿는 지도부와 그 열렬 추종자들 외에는 말이다.
중국 관영 매체는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두고 “왕개미가 큰 나무를 흔들려는 가소로운 짓”이라고 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개미떼의 힘에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보기 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600만 티베트인의 염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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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문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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