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애,‘무제’
그, 30년 전
손에 손을 잡고
가죽같이 마른 잎새들을 발로 차며
오크 힐, 언덕길을 함께 뛰어 내려가던
그가 내 앞에 있다, 창백한, 불안스런 얼굴
문득 알아볼 수 없는, 주저하는
망설이는,
큰 소리로 웃던 기억은 없지만
내 영혼의 눈 속에서 미소 짓는, 스스로
평안하던, 그가
내 어깨에 눈물을 흘린다
늘 받아들이기만 하고 주지 않던, 그는
나를 너무 오래 받아들였다, 잊기 위해서
내가 오래도록 잊었던
모든 것을 기억하는 그는
Denise Levertov(1923- ) ‘옛 애인’ 전문
임혜신 옮김
누구든, 몹시 사랑하고 헤어진 옛 애인이 있다면, 그 옛 애인을 세월의 상흔이 깊고 깊어진 노년쯤,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길목에서 만난다면, 필시 이 시와 같으리라. 청춘의 언덕길을 함께 달리던 기억들. 그가 가슴에 간직하고 있던 것처럼 그녀도 망각 속에 간직하고 있었으리라. 저물어가는 쇠락의 시간에 그를 다시 마주하면 어찌해야 하나. 한 번 더 만났음을 기뻐하기라도 해야 할까. 아니면 오래 전 사랑할 수 있었음에 감사라도 해야 할까. 아니면 그저 슬퍼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이 가을날, 병든 옛 애인을 만난다면 당신은 어쩔 것인가. 허무는 이처럼 생의 기억으로 가득한 것을. 임혜신<시인>
<
Denise Levertov(19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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