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선된 근로조건·임금 불구 영국취업 기피 뚜렷
▶ 농업·건설 부문 큰 타격… 파운드화 약세도 한몫
스코틀랜드 북부지역에 소재한 로스 미첼의 농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브렉시트 이후 외국 노동자들이 영국 취업을 기피하면서 많은 농장들이 수확에 애를 먹고 있다. <뉴욕타임스>
<포던, 스코틀랜드>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로스 미첼이 느낀 건 지난 달 블루베리 수확을 위해 오기로 돼 있던 수십명의 불가리아 노동자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노동자들이 “납치당했다”고 표현했다. 스코틀랜드 북부 미첼의 농장으로 오는 여정에서 하룻밤 묵어야 하는 버밍햄에서 30명의 불가리아 노동자들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공장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본래 오기로 했던 곳에는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영국의 대형 수퍼마켓 체인들에 과일을 공급하는 미첼은 약 50만파운드(미화 68만달러)에 해당하는 50톤의 과일 수확을 할 수 없게 됐다. 이런 곤란을 겪고 있는 것은 미첼만이 아니다. 이런 일들이 곳곳에서 보고되고 있다. 특히 의료분야와 서비스 분야에서 많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과 관계가 있다. 이후 수많은 유럽인들이 이미 영국을 떠났거나 돌아오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주가 급속히 줄어든 것이다. 지난해 7월부터 금년 6월 사이 영국이주자는 10만6,000명이나 줄었다. 이 기록이 집계되기 시작한 1964년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이다.
병원들은 의사와 간호사 고용에 애를 먹고 있다. 영국 대학들은 외국학자들과 학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인들은 독일과 프랑스에서 일자리를 알아본다. 지난달 건설업계는 유럽연합으로부터의 노동력 감소를 메울 만큼 충분한 인력을 훈련시키지 못할 경우 영국의 인프라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런던과 영국 남동부 지역 건설 인력의 절반은 외국태생이다.
‘브렉소더스’라 불리는 이런 현상은 농업분야에서 더 확연하게 느껴진다. 농업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같은 유럽의 가난한 나라들로부터 온 노동자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유럽은 대륙의 곳곳으로 일하러 가는 일용 노동자들로 붐을 이루고 있지만 영국은 기피하고 있다. 미첼의 경우 징후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가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 봄부터 돌아오는 노동자들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미첼은 “나타나지 않거나 마음을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며 “우리와 5~6년 같이 일했던 노동자들조차 그랬다. 지난여름과 가을을 지나면서 문제가 곪아터졌으며 일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쌓였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력 부족 문제가 모두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고 푸념했다.
영국 전역에서 미첼 같은 과일 재배업자들은 2018년 봄 노동자들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전국 농업연맹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9월 사이에 농업부문은 월 13%에서 29%의 노동력 부족을 겪었다. 임시 노동자 공급업체의 대표인 존 하드맨은 4월과 9월 사이 피크 시즌에는 2016년에 비해 노동력이 40%나 줄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농장주들은 유럽 노동자들을 끌어 들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더 좋은 임금과 근로조건 개선 등을 내세운다. 어떤 경우는 시간 당 15파운드(20달러) 임금과 영어 교육, 심지어 테니스장 사용과 영화관람 등까지 내건다. 영국 농장주협회 대표인 잭 워드는 “영국에 와서 일하는 것이 손쉽고 즐거운 것이 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도 안 오는 게 문제”라고 탄식했다.
남부 켄트의 농장주인 매리온 레건은 윔블던 테니스 기간 중 판매되는 딸기를 재배한다. 그는 “점점 더 적은 사람들이 일하겠다고 하고 점점 더 적은 사람들이 돌아오고 더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 일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해 온다”며 “이 때문에 계획을 세우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이민에 초점이 맞춰졌다. 탈퇴 지지자들은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같은 나라의 노동자들이 영국 토박이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계속 유럽연합에 남을 경우 새로운 이슬람 이민의 물결이 일어나 영국을 이슬람 과격분자들에 취약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브렉시트 캠페인은 극우단체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국민투표 통과는 소수민족과 이민자들을 증오범죄에 노출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됐다. 영국 내무성에 따르며 증오범죄는 기록적인 수준을 보였다.
‘브렉소더스’ 문제는 영국 파운드화 약세에 의해 보다 복잡해지고 있다.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노동자들로서는 파운드화 약세로 영국이 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독일과 네덜란드 등 보다 가까운 나라들에 비슷한 일자리들이 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과일 수확 노동자들 구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음을 감안할 때 젊고 건강한 노동력을 고용하기 위한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영국으로 일하러 오는 노동자들은 더 나이가 많고 기술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농장주들은 영국인 고용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단기노동력 공급회사는 “영국인을 채용할 수 없다는 건 실망스러운 일”이라며 “이 일은 영국인들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농업부문 실업률이 이미 낮은데다 장기적 전망이 없는 일자리를 위해 멀리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유럽연합과의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그로 인한 공백을 메울 방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노동력 부족은 올해 한층 더 악화될 전망이다. 영국은 통상적으로 매년 8만명의 계절노동자들을 고용한다. 그리고 이들의 90%는 외국태생이다.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신선한 야채와 과일 생산이 네덜란드와 폴란드, 아일랜드의 주요 경쟁자들에게 이전되고 영국 수퍼마켓들은 수입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기사를 위해 인터뷰한 농장주들은 높아진 노동비용을 이미 도매가격에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퍼마켓들은 아직까지는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과수원을 갖고 있는 한 업계 관계자는 올해 노동력이 평소보다 20% 가량 줄어들 것 같다며 그것은 약 35톤의 사과를 제때 수확하지 못해 판매용이 아닌 주스 제조용으로 돌려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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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New York Tie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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