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첫 모임… 자선축구 약속지켜, 전현직 대표 등 십 수명 참가
▶ 효창운동장서 청운의 꿈 추억하며, 재활중인 신영록 라커룸서 관전

신영록을 위한 자선경기를 연 1987년생 ‘에잇세븐(87)’ 멤버들. 이재민, 하성민, 박주호, 강수일, 박준혁, 유현호(맨 뒷줄). 배승진, 하태균, 신영록, 전상원, 신광훈, 이상호(중간 줄), 김동석, 박종진, 송진형(맨 앞줄. 이상 왼쪽부터). <윤태석 기자>
“야, 이 운동장에서 볼 차는 게 얼마만이야.”
“거의 20년 만인 것 같은데?” 칼바람이 몰아친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효창운동장. 강수일, 박주호, 박종진, 신광훈, 이상호, 하태균, 배승진, 박준혁, 이재민, 하성민, 유현호, 김동석 등.
전ㆍ현직 축구 국가대표에 지금은 프로, 실업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축구 선수라면 효창운동장은 ‘잊을 수 없는 장소’다. 국내 최초 축구 전용 구장인 이곳에서 학원 축구 경기 대부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여기 모인 이유가 더 뜻 깊다.
6년 전 심장마비로 쓰러졌다가 기적처럼 깨어나 재활 중인 신영록의 1987년생 동기들의 모임인 ‘에잇세븐‘(87)의 자선경기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에잇세븐’은 신영록을 잊지 말고 돕자는 취지로 결성돼 지난 해 12월 첫 식사 모임을 했다. 그날 2017년 연말에 신영록을 위한 자선경기를 꼭 열자고 다짐했고 약속을 지켰다.
신영록은 이날 오전 9시30분경 동생 신영훈 씨 손을 잡고 일찌감치 운동장에 왔다. 신영록 역시 세일중학교 시절 효창운동장에서 ‘청운의 꿈’을 키웠다. “여기서 축구 한 거 기억나느냐”는 질문에 신영록은 밝은 표정으로 “그럼요”라고 답했다. 동생 영훈 씨는 “오랜만에 친구를 본다는 마음에 어제부터 형이 설레 했다”고 말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에서 최근 K리그 울산 현대로 이적해 화제를 모은 박주호도 짬을 냈다. 박주호는 1987년 1월 생, 이른바 ‘빠른 87’이라 신영록보다 한 살 많지만 2007년 캐나다 20세 이하 월드컵 대표를 함께 한 인연으로 모임의 일원이 됐다.
십 수 명의 성인 선수들이 비 시즌에 이처럼 한꺼번에 모이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축구는 12월경 시즌을 마치고 다음 해 1월부터 동계훈련에 들어가 이때가 유일하게 주어지는 황금 휴식기다. 강수일이 발 벗고 나서 자선경기를 주선했다. 강수일은 이날 오전 5시부터 친구들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늦지 말라고 재촉했다. 얼마 전 축구를 그만두고 새로운 길로 들어선 전상원 씨도 기꺼이 참석했다. 그는 “십자인대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아 더 이상 공을 못 차게 됐다. 지금은 경영 공부를 하고 있다”며 “이렇게 영록이 얼굴을 보니 너무 반갑다”고 미소 지었다.
‘에잇세븐’의 상대 팀은 국내 유일의 ‘재기 전문 독립 구단’인 TNT FC였다. 소속 팀을 찾지 못한 선수들이 여기서 뛰어 기량을 유지, 발전시켜 다시 실업이나 프로로 간다. 단장을 맡고 있는 김태륭 방송 해설위원은 “우리 팀도 지금 많은 선수들이 프로, 실업 테스트를 받는 시기라 모이기 쉽지는 않았다”면서도 “신영록을 위한 좋은 일이니 선뜻 응했다”고 말했다.
‘에잇세븐’ 팀의 감독은 최근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게임을 못 뛰는 신광훈이 임시로 맡았다. 그는 손수 포메이션을 짜고 벤치에서 친구들을 독려했다. 2007년 K리그 신인왕 출신이기도 한 골잡이 하태균을 최종수비수에 세우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신광훈은 “청소년대표 시절 가끔 태균이가 수비를 봤다. 수비도 곧잘 한다”며 웃었다.
신영록은 아직 축구를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지금도 이동할 때면 반드시 옆에서 누군가 도와줘야 한다.
이날 날씨가 추워 관중석에 앉지 못하고 라커룸에서 경기를 지켜봤는데 전상원 씨가 바로 옆에서 끊임없이 친구들 안부를 전해주며 대화 상대가 돼줬다. 경기 후 ‘에잇세븐’은 신영록과 식사를 마친 뒤 십시일반으로 걷은 후원금도 전달했다. 이들의 미소를 보며 매서운 한파를 잠시나마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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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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