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따뜻했던 아버지 부시·진정성 보인 아들 부시·슬픔 공유해준 카터
▶ ‘정말 좋은 사람’ ‘거리감’ 오바마엔 평가 엇갈려
2007년 이라크에서 전사한 트래비스 매니언 해병 중위의 무덤 앞에 꽃다발이 쌓여 있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의 유족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2012년 월터 리드 병원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부상병과 기도하고 있다.
니제르에서 전사한 라 데이빗 존슨 병장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온 지난 17일 미망인이 관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다.
사람들은 전사한 군인들의 가족에게 애도를 표하려고 하지만 본의 아닌 잘못된 말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2007년 이라크 전쟁에서 트래비스 매니언 해병중위가 적에게 피격당해 숨졌을 때 한 지인은 유족을 위로하며 이건 정말 “낭비(such a waste)”라고 말했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그가 그처럼 “헛되이 죽은 것”은 유감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처럼 말을 하는 대통령은 보통 없다. 이번 달 니제르에서 순직한 군인의 미망인에게 “그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입대했다고 확신하지만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의 17일 ‘위로 전화’가 적절치 못하다는 논란이 확산되면서 순직군인들의 유가족들이 트럼프를 포함한 전직 6명의 대통령들과의 접촉에 대한 체험담을 털어 놓았다. 위로와 진정성에 대한 감사에서부터 불편한 거리감까지 각각 달랐다.
트럼프가 존슨병장의 미망인 마이시아 존슨이 남편의 유해를 맞이하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안에서 받은 전화에서 그렇게 말했다고 동승했던 존슨의 어머니와 프레데리카 윌슨 연방 하원의원(민주당) 등은 말하지만 대통령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다른 순직군인들의 유가족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받은 전화가 위로가 되었다고 밝혔고 또 다른 가족들은 전화가 올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으나 결국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각자의 체험과 또 그 체험을 전해들은 여론의 반응이 각양각색임을 보여준 이번 에피소드는 대통령의 가장 어려운 의무 중의 하나가 군통수권자인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다 숨진 미국인들의 유가족을 위로하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내가 그 리무진에 타고 있다고 상상한다면 그건 내가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말일 것”이라고 2004년 이라크전에서 외아들 패트릭 매카프리 상사를 잃은 나디아 매카프리는 말했다. 그녀는 아들이 전사한 후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너무 화가 나 백악관으로부터 온 전화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과거 대통령들과 대화했던 순직군인들의 유족들은 트럼프 전화의 타이밍을 비난했다. 남편의 유해를 맞으러 가는 그때가 미망인이 가장 힘든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족들은 애도로 포장된 몰지각한 말도 많이 들었지만 자신들의 아들과 딸들을 전쟁터로 보냈던 대통령들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매니언 중위의 전사 2주 후에 온 부시대통령의 전화는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고 매니언의 형 라이언 매니언은 회상했다. “그는 어리석은 말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금년 들어 미군 전사자 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11명, 이라크에서 14명을 기록하고 있다. 그 외에 17명의 수병이 해군 함정 관련 사고로 숨졌으며 소말리아에서 네이비실 대원 한 명이, 니제르에서 4명의 미군이 이슬람 무장단체의 매복 공격에 전사했다. 트럼프는 이번 주 자신이 “순직한 모든 군인의 가족에게 전화했으며 그건 정말 가장 힘든 전화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8월 아프간에서 전사한 조나단 헌터 병장의 미망인 위트니 헌터는 “백악관과 대화한 군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으나 오지 않았다…편지조차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화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위로를 나누는 것은 인간의 선한 본성이지요. 대통령에겐 엄청난 세계적 이슈가 많은 것도 압니다. 그러나 내 남편은 우리나라를 위해 죽었습니다”고 말한 그녀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델라웨어의 공군기지에서 자신을 만나주었다고 덧붙였다.
1980년 이란의 미 인질구출작전에서 사망한 해병대 듀이 존슨 병장의 미망인 다이앤 존슨은 당시 충격과 슬픔에 너무 감정이 복받쳐서 자세히는 생각이 안 나지만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깊은 슬픔을 표하던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자신이 “땡큐”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그 후 백악관을 방문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당시 부통령이던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을 만나 슬픔을 위로 받았는데 특히 부시의 개인적인 따뜻함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면서 나와 자신이 공통점을 가졌다고 말했지요. 난 ‘어? 뭐가?’라고 의아했는데 그는 ‘당신과 나는 미국국가가 연주될 때 울었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서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을 때 조슈아 샘스 상병은 아직도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었다. 해병대 저격수였던 그는 남부 아프간을 순찰 중 거리에서의 폭발로 두 다리와 오른쪽 손가락 둘을 잃었다. 진통제 등 수많은 약 기운에 빠져 샘스는 자세히 기억은 못하지만 권총을 찬 비밀경호원들이 오가며 대통령의 방문을 알렸던 것은 생각난다. 오바마는 샘스가 기대했던 것보다 오랜 시간을 그의 병상 곁에 머물다 돌아갔다. “대통령은 내게 훈장을 달아주면서 그와 국가가 나를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습니다. 난 그의 정책은 별로 지지하지 않지만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와는 달리 또 다른 재향군인은 오바마와의 유대에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 2006년 이라크에서 부상당했던 해병대 더스틴 커비 의무병은 2009년 노스캐롤라이나 기지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을 한 후 만난 적이 있었다. 약 20명의 부상병들이 오바마를 만났는데 자신은 오바마를 반대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상당히 거리감을 느꼈다고 그는 말했다. “마치 그와 나 사이엔 큰 바다가 놓여 있는 듯 했지요”
몇 년 후 한 친지의 주선으로 커비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그의 대통령 라이브러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부시는 그를 따뜻하게 맞으며 커피를 대접하고 장시간 담소했다. 이라크 파병은 자신의 결정이었으므로 (커비의 부상도) 자신의 책임이라고도 말했다. 커비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다 마음을 썼습니다. 그는 정말로 ‘케어’했어요. 난 그의 얼굴에서 진심을 보았습니다”
모든 유족들이 트럼프의 ‘부적절한 조의’를 매도하는 것은 아니다. 존슨 병장과 함께 니제르에서 순직한 그린베레 아디 라이트의 아버지는 17일 트럼프가 전화하여 20간이나 통화를 하며 아들에 관한 자신의 말을 경청해 주었다고 전했다. “그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난 그가 들어주기를 원했고 그는 들어주었으며 내가 대통령에게 원하는 것은 그게 전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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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The 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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