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는 어디 있냐(Where's the beef)?”라는 광고 멘트가 30여년전 히트했다. 햄버거를 산 왈가닥 중년여인이 푸짐하게 큰 빵 사이에 끼어 있는 동전만한 고기(패티)를 보고 화를 내며 종업원에게 앙칼지게 따져 묻는 말이다. 여배우 클라라 펠러가 출연한 이 TV 광고는 패스트푸드 체인기업 ‘웬디스’가 라이벌인 맥도널드와 버거킹을 겨냥하고 만들었다.
최근 연휴에 워싱턴주 남부 산골의 자연보호 지역들을 구경한 후 귀갓길에 뒤늦게 점심을 때우려고 고속도로변의 맥도널드에 들렀다가 속으로 펠러처럼 비명을 질렀다. 실로 오랜만에 먹어본 ‘빅맥’이 형편없이 작아 주니어(아이들) 사이즈를 잘못 산줄 알았다. 더구나 감자튀김과 소다음료가 포함된 ‘빅맥 콤보 밀’ 가격이 웬만한 한국식당 메뉴와 맞먹었다.
웬디스 광고가 회자될 무렵 나보다 한참 뒤 미국(LA)에 들어온 가족에게 본고장 햄버거 맛을 봬주려고 버거킹에 데리고 갔다. 하지만 입이 짧은 아내는 물론 식성이 나를 닮아 뭐든지 잘 먹는 아들(6살)도 겨우 절반을 먹고 손사래를 쳤다. 피클냄새가 싫다고 했지만 사실은 ‘훠퍼’가 너무 컸다. 기본단계 햄버거인 치즈버거를 사주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
햄버거 가격은 곧잘 소비자물가지수의 비교기준이 된다. 치즈버거 값은 1985년 64센트, 30년 후 2015년엔 1.74달러였다. 그간 인플레 비율을 감안해도 요즘 치즈버거는 30년 전보다 30%가량 비싼 셈이다. ‘빅맥 지수’도 있다. 지난달 미국의 빅맥 가격(5.30달러)을 중국 빅맥 가격(2.92달러)과 비교해 유안화가 달러 대비 45%나 평가절하 됐음을 파악한다.
생각난 김에 인터넷에서 내 출생연도의 물가를 알아보다가 웃어버렸다. 집값이 평균 3,600달러, 렌트가 40달러(월), 자동차가 900달러, 개솔린이 15센트(갤런), 달걀이 21센트(12개), 커피가 46센트(파운드), 우표가 3센트였고, 영화관 입장료가 35센트였다.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시간이 흐르면서’라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가 그해 히트했다.
하지만 내가 영주권자가 된 40년 후(1983년)엔 상황이 달랐다. 평균 집값이 9만7,600달러, 자동차가 7,200달러, 개솔린이 1.19달러, 우표가 20센트로 뛰었고, 10센트였던 식빵이 50센트, 갤런당 62센트였던 우유도 2.26달러로 치솟았다. 그해 디스코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가 히트했고 짐 존스의 ‘인민사원’ 신도 900여명이 가이아나에서 집단 살해당했다.
그래도 80년대 초반은 호시절이었다. 가족 3명이 맥도널드에서 2달러로 한 끼를 너끈히 때웠다. 물론 그 당시엔 내 봉급의 구매력도 물가에 상응해서 낮았다. 지난 2015년 미국인들의 연 평균소득은 5만3,046달러였지만 1915년엔 달랑 687달러였다. 요즘 화폐가치로 1만6,063달러에 불과하다. 미국인들의 구매력이 지난 100년간 크게 신장됐다는 뜻이다.
미국의 인플레율은 대략 연 3%로 소득상승률보다 대개 높다. 특히 인플레를 훨씬 앞질러 오르는 지출 분야가 많다. 일례로 4년제 공립대학 등록금은 1997학년도에 연간 2,966달러였지만 20년 뒤인 올해는 9,650달러로 225%나 치솟았다. 연 평균 6.1%씩 오른 셈이다. 처방약값은 2015 한해 거의 10%나 올랐다. 그해 인플레율은 고작 1% 늘었을 뿐이다.
집값은 물론이다. 미국의 중간 주택가격은 2000년 11만9,600달러에서 금년엔 23만5,000달러로 17년새 거의 2배나 올랐다. 연평균 4.1%꼴로 평균 인플레율을 앞질렀다. 영화관 입장료는 1997년 4.59달러에서 20년 후인 현재 8.84달러로 93%(연평균 3.3%) 올랐다. 개솔린 가격은 연평균 3.4%, 디즈니랜드 입장료는 5.3%가 올라 모두 인플레율을 앞질렀다.
미국 노인들은 흔히 ‘지나간 호시절(Good old days)’을 들먹인다. 하지만 젊었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꼭 호시절은 아니다. 꿈과 의욕, 활력과 낭만이 넘친 때여서 그리워질 뿐이다. 예나 제나 물가는 늘 비싸게 마련이다. 만약 20년 후 라면 한 박스가 30달러로 오른다고 해도 10달러 미만에 살 수 있었던 2017년이 호시절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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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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