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와서 박근혜 탄핵사태를 취재하는 동안 헷갈렸던 것은 민심이 어느 편 쪽에 서 있느냐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었다. 촛불과 태극기의 싸움이 워낙 격렬했기 때문이다.
촛불 측에서는 “태극기 지지자들은 박사모와 어버이 연합의 꼴통보수들”이라 했다. 그런데 많은 나의 친구들이 (대학교수와 장관을 지낸 친구까지 포함) 태극기 데모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억지로 동원된 꼴통보수가 아니었다. 반면 태극기 지지자들은 촛불을 가리켜 “노조와 좌빨들”이라고 불렀다. 내가 데모현장을 따라 다니며 지켜보니 이들은 좌빨과는 거리가 먼 울분에 찬 젊은이들이었다. 서로가 애국을 외치고 있으니 민심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그러나 헌법재판소 소장 대리인 이정미 재판관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언한 이후 민심의 소재는 분명하게 드러났다. 탄핵이 인용된 후 쏟아진 국민들 소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박정희-박근혜 대통령의 정신적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경북 구미 어느 노인의 평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라는 조모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너무 가슴이 아프고 섭섭합니다. 그러나 헌재재판관의 8대 0 결정이니 결과를 받아들여야죠. 어떤 의미에서는 차라리 잘 됐어요. 우리나라 정치가 새로 출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요.”
박근혜 고향사람의 소감이다. 이 할아버지의 평은 지금의 민심을 압축한 기가 막힌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태극기 데모를 지지했던 나의 친구들도 “헌재의 결정이 났으니 따라야지 어떻게 하겠어? 탄핵문제는 이제 너무 피곤해. 나라가 절단 나게 생겼어”라며 국민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제파탄이 일어난다며 걱정했다.
이것이 민심이다. 국민들이 탄핵문제를 둘러싼 광기로 지쳐있다. 그런데 탄핵결정이 난 후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너무나 ‘아니올시다’ 이다. 저 사람이 정말 대통령이었나 할 정도로 상식을 벗어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때문에 온 나라가 들끓고 심지어 자신을 지지하는 데모대에서 3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위로 한마디 없고 사저에 돌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헌재결정을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다.
자숙하는 의사표현이 조금도 없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문제가 제기 되었을 때는 “헌재결정 불복종은 체제부정”이라고 말하던 박근혜가 아니었던가. 더구나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맹세한 대통령이 헌법해석의 최후보루인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정치인으로서는 염치없는 태도다. 탄핵 후에 보여준 그의 자세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국민은 염두에 없고 자신의 변명과 체면유지에만 신경을 쏟고 있다. 거기에다 폐족이 되어야 할 친박들이 또 사저에 모여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있다. 그의 탄핵이 왜 국회에서 이루어 졌는가. 새누리당의 30여명이 야당에 가세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왜 대통령탄핵에 나섰는가. 친박의 횡포 때문이었다. 이는 정치인 박근혜가 주변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는 증거다. 친박과 변호인단이 박근혜를 망쳤다는 것이 양심 있는 보수지지자들의 평이다.
정치인이나 리더는 물러나는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지금 정치인 박근혜의 모습은 추하다. 불쌍할 정도다. 민심은 탄핵된 박근혜에 대해 동정은커녕 “너무 실망했다. 정 떨어졌다”는 것이 서울의 분위기다.
<
이철 고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