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머무르면서 놀란 것은 ‘촛불’ 지지와 ‘태극기’ 지지가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8.15 직후의 좌우대결을 방불케 한다. 젊은 층이 대부분인 촛불 시위 지지자들은 태극기 시위자들을 ‘돈 받고 동원된 관제 데모대원’이라고 표현한다. 반대로 중년층과 노인들이 대부분인 태극기 시위 지지자들은 촛불 시위자들을 ‘좌빨 친북세력’이라고 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동정하는 발언을 하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 반면 내 나이와 비슷한 친구들과 식사를 하면서 대체적으로 탄핵이 민심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면 펄펄 뛰면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라고 열을 올린다. 태극기 시위 현장에 직접 가보면 그림이 다르다는 것이다. 최순실 사건이 터졌을 때와 민심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친구 중 한 사람이 내일 태극기 데모에 참가하는 A씨를 소개해 줄 테니 데모 현장에 한번 가보라고 권고했다. 다음날 친구가 소개해준 A씨를 서울 시청 앞에서 만났다. 그는 대기업체 중견 간부로 있다가 은퇴한 지식인층에 속하는 60대 장년이었다. 나는 A씨가 왜 태극기 데모에 참가하는지 궁금해 여러 가지를 물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박 대통령이 무능하여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인정한다. 최순실이는 엄하게 처벌 받아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탄핵되어야 할 정도는 아니다. 무엇보다 탄핵된 후 자연인 신분에서 형사 처벌 받으면 몇 십년 징역형을 살수도 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대통령을 망신주어 보수 세력을 말살하려는 악의에 찬 정치 음모다. 보고만 있을 수 없지 않은가.”
“태극기 데모에는 일당 받고 참가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던데...”
“처음에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기독교인들이 대거 참여하기 시작했고 ROTC 출신 등 제대군인들이 많이 참가하고 있다.”
A씨는 태극기 시위대원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민주당 문재인 씨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면서부터였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태극기 시위는 박근혜 지지데모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재인 반대데모라고 했다. A씨 자신도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이 데모에 나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특이한 것은 태극기 데모대의 대부분이 60대 이상의 노인들이라는 점이다. 젊은 사람은 눈을 비비고 봐도 없다. 마치 전국 노인총회 현장 같았다. 반면 광화문에 모인 촛불 시위대는 대부분이 20-30대였다. 이들은 민주노총, 전교조 등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데모에 참석한 사람들은 거의가 자진해서 참가한 젊은이들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그러나 광장 입구에서 ‘박근혜 구속“ 등이 적힌 카드를 나누어주는 사람들은 민노총이나 전교조 회원 냄새가 물씬했다. 촛불 시위대가 모인 광화문에는 오뎅 포장마차. 찐빵장사 등 먹거리가 줄을 잇고 있어 젊은이들이 소풍 나온 기분으로 데모를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가수들의 신나는 노래는 시위현장이 아니라 페스티벌 현장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태극기 시위와 촛불시위는 분위기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시청 앞은 노인회총회, 광화문은 대학생 축제 같은 분위기다. 촛불시위 현장에서 한 가지 눈에 거슬렸던 장면은 말썽 났던 박근혜 대통령의 패러디 나체 그림 사진을 통행로에 깔아놓아 시위대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한 것이다. 양쪽이 광기에 찬 대결을 벌이고 있다. 탄핵이 되든 안 되든 헌재결정이 나면 그 후유증이 엄청난 정치위기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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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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